[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초등학교 때, 나는 내 눈이 너무 싫었다. "어머, 너는 쌍꺼풀도 없네"라는 말은 "너는 너희 엄마 안 닮았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서 그 말이 또 그렇게 싫었다. 어머니 눈은 진짜 예뻤다. 물론 어린나이엔 누구나, 세상에서 '우리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류보편의 성장 과정이다. 하지만 그런 콩깍지를 배제하고도, 어머니가 미인인 건 사실이었다. 특히 쌍꺼풀이 예쁘다. 분명 어머니 배에서 내가 나왔는데, 내 유전자는 왜 이 모양인지. 난 그 흔한 속 쌍꺼풀도 없었다. 더군다나 필요이상으로 도톰한 눈두덩이까지 소유하고 있다. 

쌍꺼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쌍꺼풀 테이프'도 내 눈에 쌍꺼풀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친구들도 이런 눈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내 눈두덩이 품격이 이 정도였다. 그 날도 '너희 엄마 안 닮았다'는 말을 듣고, 속이 상해 집에 와 투정을 부렸다. 울음 섞인 외침을 어머니에게 내질렀다. 왜 내 눈에는 쌍꺼풀이 없냐고.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이렇게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철없는 어린 딸의 표정과 말투가 사뭇 격해지자, 어머니는 딸을 위로하기 시작한다. 

"나도 30살 중반이 돼서야, 갑자기 쌍꺼풀이 생겼어. 너도 30살 중반이 되면 엄마처럼 쌍꺼풀이 생길 거야. 그러니 걱정 마." 어머니는 바로 증거사진도 내밀었다. 실제로, 어머니 젊은 시절 사진에는 쌍꺼풀이 없었다. 사진까지 보여주면, 내가 이렇게 말할 줄 알았을 것이다. "아! 나도 그때 되면 쌍꺼풀 생기는 거야? 진짜 좋다!" 하지만 난 그때, 사진을 보고 더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그렇게 다 늙어빠져서 쌍꺼풀이 생기면 뭐해! 뭐하냐고!" 

그리고 시간이 무심히 흐른다. 지금 내 나이는 '그렇게 늙어빠져서 쌍꺼풀도 필요 없다던 30살 중반'도 훌쩍 지났다. 그때는, 그 나이가 되면 아주 늙어버리는 줄 알았다. 30살 중반이 되면 욕심도 필요 없는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콤플렉스 따위는 느끼지 않는 '어른'이 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30살 중반도 '어른'은 아니었다. 내가 날 보니 그렇다. 지금 생각에는 또 60살 중반쯤 되면 어른이 될 것 같지만, 그 나이의 나는 또 생각할거다. 60살 중반도 '어른'은 아니구나 하고. 그렇다면 어른은 언제 되는 것일까. 

정산종사는 "나이만 먹고 백발만 난다고 어른이 아니라, 남을 잘 용납하고 덕을 입히는 것이 어른이니, 남을 용납하고 덕을 입히는 이는 곧 연령이 적어도 성년이요, 남의 용납만 받고 덕을 입기만 하는 이는 언제나 미성년이라"고 법문했다. (〈정산종사법어〉 응기편 8장)

어른이 되는 '나이'라는 건 없었다. 그래도 기준은 분명하다. 어른은 다만, 남을 잘 용납하는 사람이다. 다른 이에게 덕을 베푸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지금 이 순간의 일이다. 
내가 지금 남에게 용납 받는 사람인가, 용납해주는 사람인가. 내가 지금 덕을 입고 있는 사람인가, 덕을 입혀주는 사람인가. 되짚어보면 안다. 지금 어른이 되자. 용납해주는 사람이 되자. '그날이 오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일'이니까 말이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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