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원불교의 좌선과 무시선은 선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능가사자기〉에서 혜가는 "시방 제불 가운데 좌선을 하지 않고 성불한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석존 사후에 조성된 불상 가운데에는 뼈와 가죽만 남은 입정삼매의 좌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선과 깨달음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조사들은 이 체험을 반복하여 자신에게 재현해 내었다. 불교의 명맥은 이렇게 해서 이어지고 있다. 

6세기 전반 보리달마가 중국에 불교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 또한 좌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후, 혜가, 승찬, 도신, 홍인에 이르기까지 좌선은 이 깨달음을 실증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됐다. 평생을 좌선으로 일관한 6세기 후반 천태지의는 〈수습지관좌선법요〉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좌선의 방법에 대해 설하고 있다. 입문, 준비로부터 각종 마장(魔障)에 대한 대치, 마음병에 대한 경계, 깨달음의 경지 등을 설하고 있다.

특히 마음과 몸의 조화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몸의 균형을 바로 잡는 조신법, 마음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조심법, 호흡을 고르게 유지하는 조식법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천태지의는 좌선이야말로 지관(止觀) 철학에 의해 혜안, 법안, 불안을 얻어 부처의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 길임을 강조한다. 

7~8세기 6조 혜능은 공한 것이 곧 앉음이라고 하며 마음의 깨침을 강조했다. 마침내 숨 쉬고 움직이는 그 순간이 바로 도의 세계임을 설하는 8세기 마조는 '평상심이 도' 또는 '닦을 것도 없고 앉을 것도 없는 불수부좌(不修不坐)'의 여래청정선의 경지를 설파한다. 그러나 이 좌선을 모든 조사들이 폐기한 것은 아니다. 

굉지정각의 후손인 9세기 동산양개와 그의 제자 조산본적에 의해 창안된 조동의 선법 즉, 모든 생각이 단절된 가운데 청정한 성품을 비추어 내는 좌선을 확립한다. 13세기 일본의 도겐은 이를 계승하여 오직 좌선만이 불성을 발현한다는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선철학을 꽃피웠다. 오늘날 선의 양대 산맥인 임제종 또한 그 선지(禪旨)가 다소 다를 뿐 기본적으로 '앉는다'는 면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시 근본은 달마와 그의 직계제자들의 가르침이다. 달마는 〈이입사행론〉에서 범부와 성인이 함께 가지고 있는 진실 본성이 허망한 감각적 번뇌에 뒤덮여 보이지 않으므로 벽관으로써 이에 주하게 되면 진실한 이치와 합일하고 적연무위(寂然無爲)하게 된다고 한다. 

내외의 티끌이 허환(虛幻)임을 반야공으로 혁파함으로써 편안한 마음상태에서 분별을 두지 않는 것을 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신은 몸이 공적함을 관하는 동시에 하나를 지켜 움직이지 않는다(수일불이·守一不移)고 가르쳤다. 홍인은 〈관무량수경〉에 의거, 신체를 단정히 하고 산란함 없이 지평선에 떨어지는 태양의 한 점에 마음을 집중하여 참된 근본 마음을 지키라(수불진심·守本眞心)고 한다. 

8~9세기에 이르러 선원의 규율인 〈청규〉를 제정한 백장회해와 제자들은 좌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경전을 읽으며 벽을 보고 좌선을 했다. 보리달마가 행한 면벽의 깊은 뜻이 조사들에 의해 더욱 깊이 발전된 좌선은 1천 5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수행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광대학교

[2018년 8월1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