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인권위원회와 사단법인 평화의친구들이 난민바로알기 강좌를 주최해 교단안팎의 큰 관심을 모았다.

[원불교신문=강현욱 교무] 1945년 해방이후 총부에서는 당시 총무부장이던 주산 송도성의 주재로 긴급 시국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해방을 당하여 우리들 당연 급무는 무엇인가?'였다.  

회의 결과, 서울과 부산 익산역 등에 귀환하는 전재동포를 구호하기 위한 구호소를 마련하고 교단의 대표들이 선두에 서서 '원불교 전재동포 원호회' 또는 '동포를 살리기 위하야 우리는 거리로 간다'라는 어깨띠를 둘러매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해방 이후 아직 교단도 채 추슬러지지 못해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종교인으로서 전재동포 즉,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을 최일선 과제로 삼았고, 당시 80여 만명의 전재동포를 구호하게 됐다. 

어깨띠 둘러매고 거리로 나선 선진들
전재동포구호사업이 있은 지 73년 후 오늘날, 제주로 전쟁 재난을 피해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며 찾아온 또 하나의 동포들이 있다. 국가 내전으로 인해 전 세계로 피난을 떠난 예멘인 28만명 중 0.4%에 해당하는 561명이 입국했고 이중 549명이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 백 만명 이상이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속에서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우리의 과거로 본다면 전쟁을 피해 찾아온 이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난민문제가 대두되자 광화문광장과 제주에서 벌써 3번의 난민 반대 집회가 일어났으며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은 71만명이 동의해 청원제도가 생긴 이후 최고의 기록을 세우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난민 구호에 대한 호소를 통해 현재 많은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임시거처엔 생필품, 의류 등 물품지원이 모자라고, 적십자에서는 난민심사 장기화로 인해 안정적인 숙소지원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종교 건물 또는 개별적 지원 등을 통해 일단 심사완료까지 난민들에게 안정적인 숙소를 지원해 줄 것을 종교계에 간절히 요청해왔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앞서 언급한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혐오의 문제이다. 난민문제가 여론화 됐을 때 테러리스트의 유입, 성범죄의 증가, 이슬람문화의 정책화등 근거 없는 거짓 정보들의 조직적인 유포로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촉발시켰다. 또한 정부는 UN난민지위협약국으로써의 의무, 난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이전에 출도제한(出島制限) 등의 명령으로 거짓 정보로 확산된 난민에 대한 두려움, 혐오의 감정들을 가중시켜 버렸다.

1945년 긴급 시국회의 결과로,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선 전재동포구호사업이 시작됐다.

정신적 공황을 소수자에게 전가할 위험
현재 우리나라에 퍼져있는 이슬람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들은 과대화 되어있다. 대한민국은 지형상 이슬람 문화와의 접점이 거의 없었으며, 난민에 의한 범죄, 또는 경제적 피해 또한 보고된 바가 없다. 오히려 난민들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난민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히 생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난민심사 인정률은 세계 38%의 10분의1 수준인 3~4% 정도로 난민을 가장해서 테러리스트가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까우며, 고작 500명의 숫자로 남성우월적인 이슬람문화가 수용되어 여성에 대한 차별 또는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난민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난민에 대한 공포의 상징조작 결과로 나타나는 '난민에 대한 물리적 폭력 사태'이다. 중앙대 오창은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극도의 공황상태를 경험하거나, 불가항력적 위기 상태에 빠지게 되면 상징적 제물을 만들어 현재의 고통에 대해 보상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만보산 사건으로 인한 중국인 학살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1일 일본 대지진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자, 정신적 공황에 빠진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해 일본에 체류중인 조선인들을 학살한 일이다. 만보산 사건은 1931년 7월2일 중국 길림성의 만보산 지역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의 분규가 있었는데 당시 <조선일보>가 이를 과장해 속보로 보도하면서 조선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학살했던 일이다.

두 사건 모두 당시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적, 인적 재앙에 의해 발생한 정신적 공황상태를 당시 소수자였던 조선인이나 중국인에게 전가하며 보상 받으려 발생된 사건들이다. 현재의 난민 문제에 비해 과도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상과 사건의 성격은 정도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현재 제주에서는 여성실종사건 등 아무 인과관계 없는 사건들이 덧붙여져 난민공포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공포가 계속해서 심화된다면 조그마한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될 것이다.

난민은 교단 차원에서 대응해야 
때문에 가장 시급한 일은 난민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혐오의 감정을 해소시키는 일이다. 아직 제주의 출가자 한 두명이 난민청 또는 난민단체와 연대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난민문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교단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는 문제이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교단이나 교구 차원에서 적십자에 요구하는 숙소 또는 물품지원을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교도들을 대상으로 난민 바로 알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거나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실을 운영해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각 교당에서 한 주씩은 이 시대의 전재동포인 난민에 대해 법회를 보는 것도 좋다. 

아직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적은 한국은 중동 및 아프리카의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한 난민문제는 앞으로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사실 난민만이 아니라 소수자, 아니 인간에 대한 혐오 자체가 현 시대에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이 시대의 가장 약자인 난민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하루 속히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든지 또 다른 소수자를 혐오의 희생양으로 삼게 될 것이다.

현재 제주 교무 한 두명이 연대하고 있는 정도로, 난민문제는 교단 차원에서 대응해야할 문제다.

종교인으로서 먼저 해야 할 일
앞서 이야기한 긴급 시국회의 당시 어느 선진께서는 우리의 좋은 법을 살리기 위해서는 새 정부 수립에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제안 했지만 주산 송도성 총무부장은 엄격한 태도로 잘라 말했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종교인으로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를 가지고 있는 원불교뿐만 아니라 현 시대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혐오' 일수도 있다. 특히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 서울선언문에서  '상생 평화 하나의 세계'를 위해 헌신을 선언한 우리는, 현재 인종, 종교, 국적의 혐오와 벽을 치는 소아적인 이기 행위에 갇혀 버린 국수주의 민족주의에 대해 세계가 한울안 한형제 한일터임을 확인하고 실천해 가는 세계주의(일원주의)의 진정한 시험대에 서있다. 

우리는 이 시대 최대의 과제인 혐오와 맞서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전재동포 원호회' 어깨띠를 메고 '우리는 동포를 살리기 위하여 거리로 간다' 현수막을 걸고 거리로 나서야 할지 모른다.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2018년 8월1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