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광주전남교구 광양교당 조원도·이성운 부부 교도
스승 가르침과 기도, 모진세월을 견디게 해준 의지
지어놓은 것을 받는 것, 스스로 풀어야할 인연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오직 신성으로 살아온 세월, 모진 경계에서도 한결같은 공부심으로 살아온 광양교당 홍산 조원도(68·弘山 曺圓度)·상타원 이성운(68·常陀圓 李性運) 부부 교도를 만났다. 경상도 말씨를 쓰는 두 부부를 보자 제일 처음 '어떻게 전라도 땅에 터를 잡고 광양교당 교도가 됐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처음 마산교당을 시작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광양교당에서만 벌써 20년, 지금은 오직 모든 애착을 다 놓는 공부로 삶속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이야기로 그동안의 사연을 풀어놨다. 

조원도 교도의 모친은 원기39년 마산교당에서 입교한 백은명 교도다. 그는 은부모의 인연으로 예비교무를 5명이나 후원하는 공심의 주인공이었다. 그런 모친의 영향으로 원불교와 자연스럽게 인연이 된 조 교도는 결혼 후 부인 이성운 교도와 마산교당에서 교당살림에 앞장서는 알뜰한 부부 교도가 됐다. 교당일이라면 먼저 앞장서는 이가 조 교도였고, 부인  역시 32살의 젊은 나이로 교당 주무역할을 도맡았다. 

청년회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 조 교도는 옛 추억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청년회 시절 우리 마산교당 청년회가 잠시 주춤했거든요. 그때 저와 몇몇 친구들이 5명으로 시작해서 2년여 만에 100여 명으로 늘렸죠. 평균출석수가 70명~80명 정도 됐고, 등록된 청년들 수만 150여 명이 됐어요." 그때 마산교당 청년회의 활동으로 당시 대산종법사에게 우수청년회 표창을 받았다. 농촌 봉사활동과 교도소 위문방문 등  마산청년회는 다양한 교화활동으로 지역사회에 알려졌었다. 그 중심에 조 교도가 함께했다. 

조 교도와의 결혼으로 원불교와 인연맺은 이성운 교도. 남편을 따라 교당에 다니면서 딸만 둘을 키우던 그가 아들을 갖게 해 주면 열심히 교당생활을 하겠다고 법신불 전에 기도했고,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얻은 후 큰 신심을 내게 됐다고 한다. 당시 마산교당에는 부부회라는 단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들 부부도 교당의 주역이 돼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인생의 큰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원기74년경에 마산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중 개인 사업을 하게 된다. 친구의 창업에 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첫 사업에 실패해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생활의 어려움이 컸다. 하지만 이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두세 번 연이어 닥쳐온 사업실패에 생활은 너무나 어려웠다. 경제적 어려움도 컸지만, 어려워진 생활만큼이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렇게 실패한 사업에 맞물려 들려오는 주변인들의 풍문이었다. 결국 부부는 마산을 떠나게 됐다. 

이 교도는 그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광양땅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설명했다. "원기83년에 조카의 인연으로 광양에 오게 됐어요. 마침 광양에 원불교 교당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의 재를 모시러 명절대재에 참석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광양교당에 다니게 된 겁니다." 부부는 그냥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 마음비우며 살자'는 뜻으로 찾게 된 곳이 낯선 전라도 땅이었던 것이다. 

남편인 조 교도는 그때가 살면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얻어진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그때는 세상 살기가 싫을 정도로 원망심과 좌절감으로 어려운 시기였죠. 그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기도와 심고였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자꾸 번뇌가 떠오를 때마다 교전을 읽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지난 세월동안 스승님들에게 배운 가르침이 그 세월을 견디게 해준 힘이자 위로였다. 

이 교도는 원불교를 몰랐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기도생활에서 그리고 스승님들의 가르침에서 만들어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다 내려놓을 수 있었던 힘은 스승님들의 가르침과 마음공부였습니다. 그리고 늘 지은대로 받는 것이고 내가 언젠가 풀어야 할 인연이라 생각하고 다 돌려냈습니다." 

조 교도 역시 그 모든 경계가 다 내 빚을 갚아나가는 생활이라 생각했다. "제가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법문이 인과품 3장입니다. 제각기 선악의 연을 따라 지은대로 과보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제가 지어 받는 것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에서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 놓고 싶습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마저도 놓으려 합니다. 결혼도 다 시키고 살아갈 길 다 스스로 만들어 갔으니 이제는 마음에서 놓아야죠. 오직 이 공부에만 힘쓰고 살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도 매일 기도생활로 경계 속에서 마음공부를 챙기는 두 부부의 삶은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비우고 싶은 심경뿐이었다. 때문에 기도와 좌선, 교전공부가 일상이 됐다. 앞으로 삶에 더 바라는 것 없이 오직 놓고 비우기만을 원하는 이들의 모습은, 진정 만년 시기에 착을 버리려는 해탈 공부인의 모습이었다. 

[2018년 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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