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연달아 훈련이 진행 중이다. 어김없이 공양 준비를 하러 식당에 간다. 오늘 부식은 '사과 반쪽'이다. 사과를 씻어, 반을 가르고 손질 한 뒤 그릇에 담아야 한다. 훈련원 직원들은 함께 근무한 세월이 벌써 몇 년이라, 눈빛만 발사해도 손발이 척척 마음은 딱딱 맞는다. 그러니 당연히 작업 속도도 빠르다. 다만 예외도 있다. 바로 지금 하는 작업, '사과 반쪽'의 경우다. 작업하는 공정이 다단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더군다나 이번엔, 훈련생도 많아 우리 마음은 더 바쁘다. 

빠르게 사과 상자를 싱크대로 가져온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상한 사과들이 보인다 심지어 많이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일까? 우리는 술렁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탄만 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넉넉지 않다. 상한 사과를 골라내는 작업까지 추가가 된 상황. 빨리 상한 사과를 골라내고, 멀쩡한 사과만 씻고 손질까지 마쳐야 한다. 눈에 불을 켜고, 상한 사과를 찾기 시작했다. 상한 사과가 너무 많았다. '재기 불가능한 것'과 '손질하면 재기가 가능한 것' 그리고 '멀쩡한 것' 세 가지로 분류를 마쳤다. 그 후 부식으로 낼 멀쩡한 사과만 작업 하는 중이다. 하나하나의 멀쩡한 사과가 아쉬운 시점이다. 다행히 멀쩡한 사과의 수는 우리에게 딱 필요한 만큼이었다. 

안도하고 멀쩡한 사과 하나를 반으로 자르는데, 이 사과가 이상하다! 반으로 자르고 보니, 쓸 수 없는 사과다. 속살이 새까맣게 상해있다. '어? 분명히 멀쩡한 사과만 따로 모았는데?' 다시 겉모습을 확인한다. 겉은 정말 멀쩡하다. 눈을 씻고 봐도 멀쩡하다. 보통 속이 이정도로 상하려면, 겉에 작은 점하나라도 있기 마련인데 이 사과는 전혀 그런 흔적조차 없다. 어떻게 이렇게 겉만 멀쩡할 수 있을까? 이 사과가 겉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속였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되려, 묘한 배신감도 느껴진다. '넌 겉만 멀쩡하면 뭐하니? 쓸 수가 없는데' 겉모습으로 우리를 현혹시킨 사과를 타박하다 문득,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이 혹 '나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든다. 뜨끔하다. '그 어느 날' 사과가 반쪽 나듯, '그 어느 날' 나의 실지도 덜컥 드러나면 나도 이 사과와 비슷한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공부인인 것은 아닐까. 속내는 그렇지 않아도 말이다. 

정산종사는 새 도운이 돌아오고 있다면서, "새 도운은 진실한 법이 주장하는 운수니, 거짓 없고 꾸밈없고 허장성세가 없이 안에 실다운 힘만 있으면 때를 따라 기국대로 발천이 되려니와, 행동이 말만 못하고 실이 이름만 못하고 숨은 것이 나타난 것만 못하여, 어느 모로나 허망하고 거짓됨이 드러나는 이는 자연히 세상에 서지 못하게 되리라"고 법문했다.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5장) 

진실한 법이 주장되는 시대엔 결코 속일 수 없다. 거짓이 없고 꾸밈이 없어야만 성공한다. 진실함이 결국 실력이 되는 시대에 나는 정말 떳떳할 수 있을까. 저 겉만 멀쩡한 사과 앞에서, 나도 떳떳할 수 있을까. 그러니 오늘, '겉만 멀쩡한 상한 사과'가 내게 묻는다. '너는 다를 것 같니?'라고. 무섭게 알아야 한다. 스스로 반조하고 스스로 챙겨야 한다. 그래야만 설 수 있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8월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