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진수 교무] 선원에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다탕의식을 행했던 것은 그 의례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禪) 수행이 본위였고 다탕의례는 한 방편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례를 통해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선의 정신은 무엇일까? 

결론을 먼저 정리하면,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불교 이념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한 과정이 곧 다탕의례의 핵심 교화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승불교 사상이 온축된 의례가 바로 선원의 다례였던 것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범들이 곧 청규의 핵심이 된 선원다례요 다규(茶規)였던 것이다. 

이처럼 다례를 통한 교화를 강조하는 사상은 '선원청규'의 〈당두전점(堂頭煎點)〉에서도 잘 확인된다. 청규는 인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며, 중국 불교에서 나온 독자적인 계율이자 중국 불교사에 새로운 흐름과 변혁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청규서에 나타난 다례에 관한 일체의 규정인 다규는 인도의 율장에는 없는 것이며, 중국 선종만의 독특한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다규에 따르면 방장이 관원을 특별히 초청하여 차를 대접할 때에는 그냥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불법을 논하도록 되어 있다. 이때 방장은 우선 가장 좋은 차를 대접하면서도 '이 차는 변변치 않은 차이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 전한다'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겸손의 마음을 전하면서도 위의를 잃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방장이 관원을 대함에 격식을 갖춰 위의를 지니되 하심의 태도를 보여 상대를 감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다규에서는 '만약에 관원이 불법을 묻지 않으면 특별히 공손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도 보인다. 이는 잠깐 동안 차를 한 잔 나누더라도 사제의 인연을 맺는 것과 같이 귀중하게 취급하는 선원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제자가 예를 갖추지 않는 것이어서, 이에 예로써 대한다면 불가의 인연법이 아니라 속세의 교유와 다를 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규정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불도에 귀의토록 교화하는 것이야말로 다탕의례의 기본 목적이라는 점이다. 즉 차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선원다례의 큰 뜻이 있는 것이다. 하화중생의 교화 이념이 다탕의례의 핵심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탕의례 핵심 사상은 하화중생의 교화 이념이다.

이런 사상은 '선원청규'의 〈당두시자〉에도 보인다. 이에 따르면 '당두시자(堂頭侍子)는 전점다탕을 시기적절하게 하여 빈객들이 환희심이 생기도록 해야만 존숙(尊宿) 즉,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남의 본보기가 될 만한 승려만이 편안하게 불도를 전할 수 있다'고 한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그런가 하면 송대에 편찬된 〈도성기승(都城紀勝)〉에는 '다탕회(茶湯會) 모임은 산사에서 재회를 하는 경우 왕왕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다탕을 제공하여 불도에 귀의토록 도왔다'는 기록도 보인다. 

여기서 다탕회는 명절 때나 성대한 전례가 열릴 때 전문적으로 차를 달여 연회를 베풀던 모임으로 격식을 갖춘 대표적인 차회다. 이 선원다례를 기반으로 하여 사원에서는 다례를 통해 선의 고차원적 경지에 도달하려는 선적 열망이 고조됐고, 민간에서는 선원다례를 모방하여 정신세계를 강조하는 차 문화가 더욱 융성하게 됐다. 선원에서는 다례를 일일이 규정하고, 선승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함으로써 선원의 가풍이 진작되고 민간에 고급 정신문화로서의 차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들 일체의 다례에 관한 규정은 모두가 선승들의 수행생활과 밀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생활과도 완전히 융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차가 정신문화의 꽃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2018년 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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