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서품' 1장 두 번째는 '이 가운데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을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이다.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는 대종사가 우리에게 제시한 일원상의 진리의 내용이다. 일원상의 진리가 무극(无極)이자 태극(太極)이라면, 태극이 음양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이 일원상의 진리는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로 드러나는 것이다. 

〈주역〉 '계사하' 5장에서는 동귀수도(同歸殊塗)와 일치백려(一致百慮)에 이어서,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와서 해와 달이 서로 미뤄 밝음이 생기며,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와서 추위와 더위가 서로 미뤄 해가 이루어지니,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고,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니, 굽힘과 폄이 서로 감응하고 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해, '일월왕래(日月往來)'와 '한서왕래(寒暑往來)' 그리고 '굴신상감(屈信相感)'을 밝히고 있다.

일월왕래와 한서왕래는 '생멸없는 도'를 의미하고, 굴신상감은 '인과보응 되는 이치'를 의미한다. 먼저 생멸 없는 도를 만나보고자 한다. 

생멸 없는 도에서 '생멸'의 뜻을 위 인용문에서 찾을 수 있다. 생(生)은 '일월(日月)이 왕래하고 서로 미뤄 밝음이 생한다'이고, 멸은 '한서(寒暑)가 왕래하고 서로 미뤄 해가 이루어진다'의 '세성(歲成)'에서 해 세와 같은 의미이다. 

생은 일월의 생생하는 작용이고, 멸은 한서를 통해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멸할 멸(滅)은 수(水, 물)와 화(火, 불) 그리고 과(戈)로, 물(추위)과 불(더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심판이다.

생멸은 생사와 서로 통하는데, '계사상' 4장에서는 "시작에 근원하여 마침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죽음과 삶의 말씀을 아는 것이다"라고 해, 원시반종(原始反終)하기 때문에 사생(死生)의 말씀을 안다고 했다. 

즉, '죽이고 살아가야' 생사를 넘어선 자신의 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 '산풍고괘(山風蠱卦)'에서는 "마치면 곧 시작이 있음은 하늘의 운행이다"라고 해, 천도의 운행이 종시(終始)임을 밝히고, '계사하'에서는 "그 도가 심히 위대하여 모든 것을 폐하지 않으나, 종시로써 두려워함은 그 요체가 허물이 없음이니, 이것을 역(易)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해, 〈주역〉의 진리인 역도(易道)는 종시를 자각하여 허물 짓지 않음에 있다고 했다. 

종시는 시작에서 마치는 시종(始終)과는 다른 차원으로 사생의 의미이다. 마친 즉 시작은 시간의 본질이자, 하늘의 운행으로 영원한 현재인 순간이자, 찰나이다. 

따라서 '생멸 없는 도'는 생사를 초월한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을 통각(洞覺)했을 때 수용되는 것으로 〈주역〉의 종시원리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원광대학교ㆍ도안교당

[2018년 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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