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청년들의 만남과 소통
그 자체로 우리는 평화를 경험했다

[원불교신문=한가선 교도] 얼마 전, 북한 출신 친구와 함께 중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다. 비자를 받기 위해 여행사에서 함께 비자 발급 신청서를 적고 있는데, 신청서의 맨 윗줄에 '출생지' 기입란이 보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대한민국 서울'이라고 기입한 후 신청서의 다른 부분들을 채워 가는데, 옆의 친구는 머뭇하는 게 보였다. '북한 회령'이라고 적을 수는 없을 터. 

잠시 고민하던 그 친구는 결국 출생지 기입란에, 처음 한국에 정착했을 때 받았던 주소지인 '경기도 화성'을 썼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태어난 장소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출생지가 내 정체성의 일부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참 많이 한다. 으레 하는 인사치레, 호구조사, 또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한 번쯤 물어보는 질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이 질문을 받고 곤혹스러울 수 있겠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곤혹스러워야만 할까. 누군가는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단지 고향이 함경도, 량강도, 황해도일 수도 있는 건데,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의 고향이 이북이라고 할 때 흠칫 놀라게 된다. 종북, 빨갱이, 간첩 등 남한사회에서 '북한'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수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단지 '태어난 장소'일 뿐인데도,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가 힘들다. 이렇게 남한사회에서 왜곡된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출생지'라는 불편한 꼬리표를 평생 달고 다니겠구나.'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던 세상이 나에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문뜩 작년 이맘때쯤 혜주(가명)와 치맥을 나누며 탈북 스토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 사람들이 주로 중국, 태국 등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온다는 사실도 잘 몰랐던 나에게 혜주는 본인의 탈북과정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듣는 동안, 나의 내면에는 변화가 일었다. 

나에게 혜주는 더 이상 '북한에서 온 친구'가 아니었다. '9살 차이나는 동생과 함께 미얀마의 어느 가파른 산을 넘어 본', '메콩강에 대한 두려운 기억을 갖고 있는', '태국의 땡볕 아래 내복을 가위로 잘라 반팔로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만 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며 인생을 살아온 한 친구'쯤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안테나 달린 흑백TV에서 초고화질 LED TV로 변화 하듯, 다채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직접 만나보고 소통한다는 건, 자연스레 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를 제거하고, 그 삶의 다채로운 색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민족한삶운동본부에서 매년 진행하는 '남북청년 한마음 한걸음' 프로그램 활동도 그런 의미에서 저마다의 가슴에 큰 여운을 남긴 것 같다. 

두 달간의 기획 워크숍과 6박7일의 남북청년 문화교류기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건, '남한 출신&북한 출신'이라는 두 가지의 꼬리표를 잘라냄과 동시에 다양한 개성과 정체성을 가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도전이 아니었을까?

70년 이상 갈라져 있는 지금의 한반도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앞으로 어떻게 통일에 다가가야 하는 것일까. 이는 내가 끊임없이 짊어지고 가는 화두이자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물론 저마다의 생각이 다 다르고,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내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지닌 우리가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알아갈수록, 왜곡된 고정관념으로부터 오는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이는데 가까워진다는 것. 난 경험으로부터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촌교당

[2018년 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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