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은경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을 이루시고 사람을 모아 처음 하신 일이 '저축조합운동' 이다. 우리 생활 속 낡은 습관과 낭비를 막아 자본을 만들도록 하셨다. 이 자본으로 대종사께서는 제자들과 더불어 바다를 막는다. 서해안 길룡리 앞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시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생 곡식이 나오는 땅을 선물하였다. 이 일을 하며 제자들은 일심으로 단결을 했고, 신심이 깊어졌다. 바다를 막아 농토를 만들며 우리가 뭉치면 이렇게 큰일을 이룰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 또한 얻게 되었으리라. 이때가 원기4년(1919)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때이다. 

대종사께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만세소리를 '개벽의 상두소리'라고 하시며, 개벽 세상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셨다. 저축조합운동과 방언공사를 통해 사람과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은 제자들에게,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서원으로 기도를 올리도록 하셨다. "각자의 마음에 능히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창생을 제도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라" 하시고, 일자와 방위를 지정 하시어 일제히 기도를 하게 한다. 

그로부터 110일째 8월21일(음 7월26일)에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느냐?'고 물으시며 기도 후 자결을 명하셨다. 제자들이 다짐의 증표로 백지에 무인(拇印)을 찍은 것이 혈인으로 피어남을 보신 대종사께서는 "법계가 인증했으니 그 죽음을 각오한 마음으로 창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기도를 하지만 동시에 기도를 의심하기도 한다. 모든 기도가 다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종사님과 구인선진께서는 목숨을 바쳐 세상을 바꾸겠다는 기도를 하셨다. 일제 식민지 시대였고, 길룡리라는 시골 한구석에서 몇 명의 촌부들이 단지 스승님의 말씀에 어찌 세상을 바꾼다는 거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너희가 죽으면 세상이 바뀐다' 하신 대종사님의 그 말씀에 말이다.

결국 선진들의 대단한 결의가 사무여한 기도로써 백지혈인의 이적으로 나타났으며, 대종사께서 인증을 하셨고 법계의 인증을 받아 지금의 원불교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혈인을 나투신 대종사님과 구인선진님들의 정신적 DNA를 이어받아 교단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 오고 있다. 혈인을 계속 만들어 내는 주인공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교역자과 교도들이 세계 각국에서 혈심 혈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100년의 역사를 통해 그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종교가에서 기도의 힘은 그 회상을 이끌어가는 힘의 원천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기도를 통해 온전한 나와 만나고 이웃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고 진리와 만나는 것이다.

천의를 감동시킨다는 것, 이것은 세상을 감동시킨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세상의 문제와 아픔을 함께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종교인이라면, 또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마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가? 관념적인 기도가 아닌 기도의 힘으로 세상을 끌어안고 깨달음과 실천이 함께 하는 적극적인 기도의 의미를 생각할 때이다.

또한 창생이라는 게 무엇인가? 민중이 아닌가? 세상의 문제에 직시하고 몸으로써 함께하는 것이 바로 창생을 제도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빈곤의 문제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빈부의 문제, 노동·인권·환경·여성의 문제, 평화의 문제에 우리 각자 각자가 창생 제도의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중 희생된 영가들이 벌써 서른 번째라고 한다. 쌍용차의 문제는 한국사회 노동문제의 핵심이라 할 만큼 커다란 사안이다. 
대량해고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무서운 결과를 낳았는지 이 사태를 통해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며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난민문제를 포함한 인권 사각지대의 문제와 폭염·미세먼지·한파 이 모든 것이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파괴의 고통이며, 인류 욕심의 결과임을 자각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서 실천해야 함을 올 여름을 통해 우리는 부단히 공부했다.

또한 사회 곳곳에 만연한 여성 차별문제가 있다. 우리 원불교는 이미 100여 년 전에 남녀권리동일을 실천해 온 선구적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로 어둠의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교법으로 세상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곁 소성리에서 6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평화라고 하는 것이 어느 지도인의 힘만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기도가 평화의 물꼬가 되어, 커다란 평화의 파도로써 한반도를 평화 물결이 넘치게 할 것이라며 밤낮을 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멀게만 생각했던 이웃의 문제와 아픔들이 결국은 나 자신의 문제였음을 깨닫고 함께 하는 기도와 실천하는 행동으로 천의를 감동시키며, 창생 제도의 혈인으로 나퉈야 한다. 우리는 올해 법인기도를 광화문 광장에서 올린다. 낯설고 두렵기만 하였던 광장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다 보니 이제는 친근하다 못해 가깝게만 느껴진다.  

법인성사 100주년을 앞두고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서 죽어도 여한 없는 기도의 터울림을 통해 작지만 단단하게 우리는 백지혈인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중구교당

[2018년 8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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