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우리가 가진 시간과 돈, 정신을 평소에,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며 사는지를 보면, 나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과거 불가에서는 볼 수 없는 일기법을 창시한 뜻은, 나의  돈과 시간, 정신과 육신을, 죄는 짓지 않고, 오직 복만 짓는데 사용하자는 데 있다.

중생들은 나에게 있는 돈, 시간, 정신을, 세간락을 추구하며 내 삶을 좀 더 안락하고 즐겁게 만드는데 다 써버린다. 그런데 이왕이면, 내가 가진 것들을 이 공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데 쓰여 진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 이것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게 복전을 개척하는 불보살들이다. 그러한 불보살의 생활이 간고하다 하여 그 삶을 어찌 고라 할 것인가? '오로지' 공을 위해 정신·육신·물질을 바치며 일생을 삶으로써 마침내 불보살이 되라는 뜻으로 대종사가 내놓은 것이  '전무출신' 제도이다. 그 전무출신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하는 정토회원의 공은 전무출신 못지않을 것이다.  

십타원 양하운 대사모는 소태산 대종사가 회상을 창립하기까지 대종사의 사가일을 전담하며 갖은 수고를 다했다. 총부근처로 이사한 후에도 일정한 집이 없어 수차례 이사를 해야 했다. 논과 밭으로 고역을 다했었고, 총부의 세탁, 바느질, 남의 집 품삯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다만 자녀 교육은 교중의 육영부 후원으로 이뤄졌다.) 일반 교도들이 이를 죄송하게 생각해 성금을 모아 십타원 대사모를 도와드리자는 의견을 모은 일이 있었다.

이를 들은 대종사는 "이만한 큰 회상을 창립하는데 그 사람도 직접 나서서 창립의 큰 인물은 못 될지언정 도리어 대중의 도움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자력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처지라면 모르거니와,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떳떳하고 행복한 생활이니라"라고 말해 모금을 중지할 것을 명했다. 

대종사 대각 후 그들은 여느 부부라기보다는 스승과 제자와 같았다.  어느 때인가 십타원 대사모가 들에서 일을 하고 밀짚모자를 쓰고 땀 젖은 적삼 위에 삽을 메고 가는 것을 보고 대중들이 안타까워하자, 대종사는 "저것이 하운이 생애의 보람이요, 복이다"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십타원 대사모는 "어떤 이는 남편이 모든 사람을 해롭게 해서 자기 가족 몇 사람을 유익 줌으로 사회의 배척을 당하고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되는데, 나는 자력 생활하는 법을 알아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며 법열에 충만했다.

이 무렵 교단에서는 인재양성단을 결성해 매월 16일에 단금을 내었는데, 이 단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의 집 벼 베기며 벼 타작 등 품삯 일을 하여 그 의무를 이행했다 하니 그 생활의 곤궁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선기에는 강연, 회화, 문답 등 시간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대산종사는 양하운 대사모가 열반에 들자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반드시 숨은 것을 바탕함과 같이 드러난 성자의 배후에는 반드시 숨은 무명의 성자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해 그 공덕을 높이 기렸다. 

정신·육신·물질로 자력이 있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나아가 그 자력이 회상 창립과 발전에 쓰여 질 수 있다면, 더욱 '떳떳하고 행복한' 삶이리라.

/미주총부법인

[2018년 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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