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처선방-퇴임 전무출신의 삶

[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인간의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 2040년쯤에는 90세를 넘어설 전망이다. 70세 정년퇴임을 기준으로 20년은 족히 정양시설에서 노후생활을 해야 하는 퇴임 전무출신으로서 적잖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건강에 대한 우려와 부족한 정양시설에 대한 염려가 크게 자리한다. 퇴임 전무출신의 정양대책이 출가교화단 총단회의 주요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10년 전부터다.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일평생 교화현장에서 무아봉공으로 살아온 퇴임 전무출신들은 교단의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기도·후원합력으로 기운을 보탠다.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의 여러 미담을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호에서는 정책이슈보다 퇴임 전무출신들의 삶 속에 들어가 수도·정양하는 생활을 들어다보았다. 폭염이 덮친 한여름에도 법인성사 100주년 법인기도에 정성을 모으고 있는 중앙여자원로수도원과 젊은 동산원로수도원, 두 곳을 찾았다.  

중앙여자원로수도원 원로교무들은 매월 삼순일(1·11·21일)마다 대각전에 모여 법인성사 100주년 법인기도를 올린다. 기도 주례는 교화단별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며,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우리의 소원' 노래를 부른다.

꺼지지 않는 촛불, 기도
중앙여자원로수도원(이하 수도원)은 기도, 공부, 보은 등 모든 활동이 교화단별로 운영된다. 3년마다 조단이 이뤄지고, 상임위원회가 이를 관장한다. 130여 명이 되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화합정진하는 수도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13년 전 교화단체제를 완비했다. 

법인성사 100주년 법인기도에도 교화단별로 주례를 맡기로 했다. 21일 법인절 새벽5시, 수도원 대각전이 원로교무들로 가득 찼다. 몸이 불편한 원로들은 각자 방에서 가느다란 불빛에 의지해 기도를 올린다. 일평생 갈고 닦은 독경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니 전율이 느껴진다. 

김복환 원로교무(상임위원회 대표)는 "매월 삼순일(1·11·21일) 기도를 올리고 있다. 우리는 교단 100년을 만든 주인공들이다. 전무출신으로 일생을 살아오면서 몸은 비록 교화현장을 떠나 있지만 마음은 늘 교단을 향해 있다"며 "주세불의 경륜을 실현하는 것이 전무출신의 정신이고 우리의 삶이다. 대종사의 일원대도, 정산종사의 삼동윤리, 대산종사의 세계평화3대제언을 공부 표준으로 삼고, 모든 일을 공의로 결정하게 했다. 수도원은 개벽회상의 종가, 여래의 적공실이 돼야 한다"면서 퇴임 후에도 흐트러짐 없는 전무출신의 삶을 전했다.   

법인기도가 끝날 무렵, 대중은 '우리의 소원은' 노래를 불렀다. 또 한 번의 전율이다. 평균나이 82세면 초기 교단을 이끌며 일제의 핍박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온 선진들이다. 개인은 못해도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면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올렸을 숱한 기도들. 그렇게 군종교화, 방송교화, 원불교100년성업, 사드반대 평화운동, 오늘의 법인기도까지 후진들의 뒤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묵묵히 기도정성을 모으고 있었다. 

평화 위한 통일·나눔장터
지난해 12월에는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며 통일기금마련 바자를 열었다. 10개 교화단이 단별로 품목을 진열하니 장터가 따로 없다. 그동안 모아진 통일기금만 1천만 원, 원기99년 원불교100년을 앞두고 통일교화의 종잣돈을 모으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바자는 "우리에게 통일이 가장 절실하다"는 어느 선진의 간절한 염원이 모든 걸 대변했다.  

'국운이 교운이다'는 스승의 뜻을 새기며 사드가 배치된 성주성지를 찾아 평화통일을 기원하고,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모습에 기뻐했던 순간들. 아직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쉬지 않고 올리는 기도소리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중앙여자원로수도원은 격주 수요일마다 원로교무를 대상으로 웃음치료를 한다.
중앙여자원로수도원은 격주 수요일마다 원로교무를 대상으로 웃음치료를 한다.

활기차고 건강한 정양생활
노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됐다. 수도원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프로그램을 고심하던 임직원들이 올해부터는 서예, 정가, 합창단 외에도 스포츠댄스, 웃음치료, 영화감상을 개설했다. 웃음치료와 영화감상은 수도원 손도상 교무가 맡았다. 처음에는 손동작 하나, 소리 내어 웃는 것조차도 어색하고 창피해 하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제법 따라온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일주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직접 해보니 우리 젊은 교역자들에게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는 걸 알았다. 우리 삶이 항상 긴장만 하지 풀 줄을 모른다.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할 줄 알아야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해진다"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웃어본다.

동지와 함께해 얼마나 든든한가
"교화현장에서는 늘 기다리는 인생이었다. 교도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기다림이 있는 생활이 행복했고, 내가 살았던 곳이 꽃자리였다. 현장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여기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유희진 원로교무)

"동지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든든한 일인가. 동지들이 삶에 위로가 된다." (홍경봉 원로교무) 

"일생동안 습관 들여온 자세가 수도원에서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동체 생활이란 것이 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일원상 법어를 표준삼아 살아가면 좋겠다." (한순인 원로교무) 

동산원로수도원을 찾았을 때 원로교무들과 나눈 이야기다. 대부분 원기55년~70년 출가서원을 세워 30여년 동안 전무출신으로 현직에 봉직하다 퇴임한 선진들이다. 

위아래 동기집단이라 종종 갈등도 존재하지만 이곳만의 젊은 패기가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덕일 원로교무는 일주일에 2~3번씩 원광상록원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도우미가 돼 준다. 공도자숭배이기도 하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보은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바람이 있다면 다른 원로교무들도 용기를 내줬으면 하는 것이다. 힘든 육체적 봉사는 할 수 없어도 일상의 작은 도움,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면 퇴임 후 자원봉사가 얼마나 멋진가.

동산원로수도원 김덕인 원장은 "교단에서 정양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대규모보다는 50명 이하의 소규모 정양시설을 마련했으면 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개성이 강하다. 지금처럼 한 시설에 100명을 넘기면 서로가 힘들어진다"고 현실을 짚었다. 또한 "고창수도원의 '참살이'를 전체 수도원의 대표브랜드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을 생산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실타래를 풀어 연결고리를 잘 이으려면 수도원 총괄 원장이 겸직이 아닌 단독발령으로 근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생을 무아봉공으로 살아온 원로교무들의 삶이 좀 더 생기있고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동산원로수도원의 원로교무들이 퇴임 후 겪게 된 공동체의 삶을 돌아보며, 법동지와 함께해서 행복하고 든든한 이야기를 전했다.

[2018년 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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