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지난 호에서 '서품' 1장의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를 〈주역〉의 '근원적인 진리는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만 현상의 세계는 다르게 펼쳐진다'는 동귀수도(同歸殊塗)로 풀어 봤다. 이번에는 반대로 동귀수도를 '생멸없는 도'로 만나고자 한다.

동귀수도를 생사의 의미로 풀면, 동귀는 '같은 곳으로 돌아가다'로 생에서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수도(殊途)는 반대로 죽음에서 생으로 건너와 각자의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우리말에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한 근원 내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죽음을 '마친다(終)'라 하고, 유학에서는 임종(臨終)이라고 한다. 임종은 '이 세상에서 임무를 마쳤다' 내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천명)을 다했다'는 의미이다. 〈예기〉에서는 '군자가 죽으면 종이고, 소인이 죽으면 사이다'라고 해, 생멸 없는 도를 자각하고 자기의 사명을 마친 군자와 생사의 본질을 모르고 욕망으로 살아간 소인을 나누고 있다.

또 〈예기〉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고, 형상과 넋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예기〉의 혼백설(魂魄說)은 영혼의 불멸에 바탕을 둔 것으로 유학의 상례(喪禮)에서 잘 드러난다. 

상례에서는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복(復, 초혼(招魂))이다. 초혼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것으로, 동쪽 추녀를 통해 지붕에 올라 집의 중앙에서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면서 '아무개야 돌아오시오'라고 큰 소리로 세 번 외치고, 옷을 앞으로 내려주는 것이다. 또 복(復)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지금 바로 돌아오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음에 다시 잘 돌아오라는 작별 인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죽은 자의 저승길 가는 노잣돈을 챙기는 것, 산 사람과 같이 밥을 떠 놓는 것 등은 모두 영혼의 불멸을 담고 있는 종교적 행위이다.

영혼의 불멸에 따른 생멸 없는 도는 〈대종경〉 '천도품'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천도품'  '천도법문'에서 "너의 육신 나고 죽는 것도 또한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니니라"라 하고, 또 "그 원리를 아는 사람은 이 육신이 한번 나고 죽는 것이 옷 한 벌 갈아입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니, 변함에 따르는 육신은 이제 죽어 사라진다고 해도 변함이 없는 소소(昭昭)한 영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라고 했다.

따라서 '서품' 1장의 생멸 없는 도와 〈주역〉의 동귀수도는 육신의 생멸이 아니라 영혼 불멸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는 '죽으면 끝난다'는 현대인들의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생사의 본질을 깨우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원광대학교ㆍ도안교당

[2018년 8월3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