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에서 보낸 수학기간은 내 삶의 가장 빛난 시간
물질개벽 시대, 어떻게 정신개벽 준비할 것인가
스승과 문답 통해 공부의 방향과 체를 잡아

[원불교신문=강석준 교무]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영산에서 보낸 수학기간은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좌선하려 가는 길을 비춰 줬던 영롱한 별빛, 선체조가 끝난 후에 봤던 구름 덮인 옥녀봉, 겨울에 눈 내린 중앙봉의 설경은 영산에 신비로움을 더해 줬다. 영산은 오래 전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방문해서 하룻 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편안했던 기운이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로 인한 뭔가 보이지 않은 힘이 나를 다시 영산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젊은 학우들과 함께하는 수업은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교무님들과 함께 했던 정전 수업은 대종사님의 법을 오롯하게 체 받는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수요야회 때 일기 발표를 들으면서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고, 교우들과 밭에서 봉공 작업을 하던 일, 운동회가 끝나고 늦은 밤중에 파스 한 장을 가지고 방에 찾아와 전해주던 교우, 혼자서 생활하려면 힘들지 않느냐며 배려해 주던 눈길들을 통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학교의 일과를 지켜나가면서도 시간이 날 때면 삼밭재에 올라 기도를 했고, 매일 기도와 108배를 통해 공부길을 잡아 나갔다. 

영산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은 달리기를 하는 것인데, 쉬는 시간이나 일요일 법회를 마치고 선진포나 대각터, 귀영바위, 길룡 저수지 등 성지 곳곳을 몸으로 느끼며 달리는 일은 영산 생활에 활력을 더해 줬다. 영광군청에서 핵 발전소까지 달리면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도 해보았고, 길룡 저수지를 지나 갓봉을 넘어서 백수읍으로 가는 산길을 달리면서 호젓함을 느껴보기도 했다. 

또 길가에 피어나는 유채꽃, 쑥부쟁이, 들국화는 철따라 나를 반겨주고 들판에 흐트러진 산딸기는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다. 쉬는 날 교우들과 함께 법성포까지 달려가서 먹었던 짜장면은 세상 어느 곳의 요리에 비할 수 있을까? 특히 원기101년 대각개교절에 마라톤을 기획해 총장님을 모시고 미국, 중국, 네팔 출신의 학생들과 함께 달리기를 했던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방학 중 일요법회 때 설교할 기회가 주어졌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로 연마를 했다. 그런데 당시 알파고가 한창 화제였던 시기였는데 이를 예로 들었다. 
나는 '지금이 물질의 발달이 가장 치성할 때이고, 따라서 대종사께서 주창한 정신개벽의 필요성이 다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내용을 골자로 과거 몇 만 년의 물질 발달보다 최근 100년 동안의 물질 발달이 더 크고, 앞으로 이 추세는 더욱 빠르고 치성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는 정신개벽을 이뤄내지 않으면 우리의 파란고해의 삶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정신개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을 기반으로 하는 수행과 적공을 해야만 한다'고 열심히 주장했다. 학사 일정을 마친 후 6개월 정도 교무고시 준비를 위한 시간도 있었는데, 이 시간은 법문에 오롯하게 몰입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됐다. 처음에는 공부량이 방대해서 부담이 많았는데, 계속해서 연마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전체 범위를 숙독하는데 일주일에 한번,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고는 하루에 두 번까지 리뷰하게 되면서 교무 검정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소중했던 경험은 여러 가지 질문에 정성으로 응해준 총장님과의 문답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공부 방향로와 체를 잡을 수가 있었고, 여러 차례 모난 투정에도 다정함으로 돌봐준 여러 교무님들의 가르침 때문에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영산에서의 생활은 출가자로서 나를 다듬어 가는 시간이었고, 영산은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 고향이 됐다.

/원광제약

[2018년 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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