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오타원 이청춘 선진은 38세 되던 해 최도화 선진의 연원으로 소태산 대종사를 뵙고 제자가 됐다. 입교한 그 이듬해에 자기 소유의 토지 전부를 교단에 희사하려는 뜻을 올리자 대종사는 더 신중히 생각해 보라며 여러 번 거절했다. 

당시 중앙총부는 15마지기 소작농으로 연명하던 시절인데, 이청춘이 희사하려는 땅은 무려 70여 마지기나 됐다. 어려운 시기 큰 희사자가 나타났을 때, 한 번도 아니고 거듭 거절한 대종사의 취사는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대종사가 거절하며 한 말은 '사람의 마음이란 처음과 끝이 같지 않을 수 있으니 더 신중히 생각하여 보라'는 것이었다. 아직 신입교도에 불과한 이청춘이 꽃발 신심으로 거액을 희사했다가 혹여 마음이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신 취사였을 것이다. 청춘이 마음에 변동이 없이 거듭 받아주시기를 원하자, 대종사 드디어 허락하며 이르기를 "덕을 쓸진대 천지같이 상(相)없는 대덕을 써서 영원히 그 공덕이 멸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그리하여 이청춘은 마침내 자기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토지를 교단에 희사해 회상 창립의 큰 기초를 마련해줬고, 전주의 가산을 정리하여 1,000여 만 원을 희사해 전주교당을 세웠다.

보통 사람은 무엇이든지 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흔적이 마음에 남는다. 그것을 상(相)이라고 한다. 남에게 떡 한쪽이라도 주고 나서 그 상이 남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알기에 대종사는 혹여나 이청춘의 마음에 상이 남지 않도록 미리 경계를 해준 것이다.

<정전> 천지 보은의 조목 8조에서는 '천지의 응용무념한 도를 체 받아서 동정간 무념의 도를 양성하라'고 했다. 또 '정신·육신·물질로 은혜를 베푼 후 그 관념과 상을 없이 하라'고도 했다. 천지는 우리에게 공기와 땅, 풍운우로를 온통 말없이 베푼다. 무심으로 은혜를 베푸는 천지의 모습을 배워서 우리도 정신·육신·물질로 무엇을 베풀었거든, 베풀었다는 상과 관념에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상없이 베푼 덕이야말로 대덕(大德)이며, 이렇게 상을 놓는 공부를 어쩌다가 할 것이 아니라, 동정간에 무시로 챙겨서 하라는 가르침이다.  '내가 무엇을 줬다', '내가 희생했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 이것이 금강경에서 설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며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원불교의 수행은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수행이다. 진공. 참으로 텅 비었다는 것은, 털어내고 털어내어서 더 이상 털어낼 것도 없는 경지이다. 한 생각을 털어내었어도 털어내었다는 생각이 있으면 다시 상에 떨어질 수 있다. 상을 놓았다는 그 생각마저 털어낸 참으로 텅 빈 자리, 뿌리까지 상을 녹여낸 그 자리, 허공과도 같은 그 자리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지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기에 진공묘유라고 한다. 

잘 잊어버리는 것은 안 좋은 습관이지만 무념의 자리에서 무념할 줄  알아, 정신·육신·물질로 무엇이든 베풀고 나서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습관은 공부인이 길들여야 할 심법이다. 그 사람 앞길에는 무루의 복덕이 가득할 것이다. 

/미주총부법인

[2018년 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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