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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실함으로 24년간 자재개발 연구
오직 성실함으로 24년간 자재개발 연구
  • 유원경 기자
  • 승인 2018.09.04
  • 호수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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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 / LG하우시스 청주 창호개발기술팀 김양범 총괄실장
생산직으로 취업해 연구원, 좋은 자재개발에 매진
전문대졸업자 차별 안 받으려 성실함으로 노력해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건축과 시설, 장비 등이 발전을 거듭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기술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다. 특히 건축자재와 생산기술의 발전은 대한민국 산업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고, 해외수출을 열어가는 무역업에 상당한 역할을 이뤘다. 생산업 기술연구직에 종사하며, 오직 품질 좋은 상품의 연구개발에 매진한 LG하우시스 청주 창호개발기술팀 김양범 총괄실장(법명 구영·상당교당 교도회장)을 만났다. 생산직 입사를 시작으로  32년의 시간을 자재개발 연구와 연구소 관리, 발전에 힘써온 그다.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건축에 사용되는 모든 자재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주로 이곳 청주 공장에서는 건축자재나 차량부속품 등을 생산했었는데요. 흔히들 알고 있는 모노륨(장판)이라든가 하이섀시, 알루미늄 창, 우드마루, 자동차 인조가죽 등을 생산하죠." 김 실장의 연구소는 청주 공장에서 생산되는 자재들의 품질을 높이고, 더 우수한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도록 연구하는 곳이다. 중동 등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해오면 정재과정을 거쳐 PVC(Poly Vinyl Chloride)를 생산, 다시 이 PVC를 활용해 건축 및 산업자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이곳 청주 공장에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PVC의 1차 가공품에 첨가제를 넣고, 2차 가공을 통한 건축·장비 등의 자재를 만들어 내는데, 김 실장이 소속된 이곳 연구소는 품질이 뛰어난 자재를 개발하고, 생산단계에서 테스트를 하는 곳이다. 

"제가 처음 입사할 때는 생산직 근로자로 입사를 했습니다. 당시 전 동양공업 전문대학(현 동양미래대학교)을 졸업했는데, 생산근로자들을 뽑을 때 대학졸업자들은 배제시켰기 때문에 고졸이라고 속여 입사했죠. 4년6개월 근무하다가 전문대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생산직에서 연구소로 이동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24년 정도를 연구소에서 생활하게 된 겁니다." 

뜻밖의 기회로 연구소에 오게 됐으나, 연구소 생활도 그에게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연구소에 와서 보니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한 아쉬움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했죠.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 성실함이었습니다. 더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하고, 궂은 일, 어려운 일,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됐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고, 쉬는 날에도 근무하는 날이 많았던 그는 그만큼 회사에서 인정받는 성실한 연구원이었다. 그렇게 성실한 회사생활을 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그는 원불교 교도였던 자신의 신앙생활을 말했다. "학생시절부터 교당생활을 시작해 의정부와 서울, 울산, 청주에 올 때까지 늘 이동하는 곳마다 교당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항상 교당에 마음을 두고, 감사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회사생활도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늘 교당에서 교무의 가르침으로 살아온 그는 교도로서의 신앙과 자리이타의 교법실천에 자부심을 느끼며, 교법이 직장생활의 표준이 됐다. 

그는 '2012년~2013년이 자신의 생에 가장 큰 위기의 시기'이자 '일생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시기'임을 고백했다. "9월 중순 즈음 의료사고로 인해 어머니가 열반에 들었어요. 갑작스런 어머니의 열반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말 설상가상으로 평생의 일터였던 연구소가 타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됐죠. 그리고 이듬해 초, 위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고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믿기지 않았죠. 하지만 의사들도 병원관계자들도 어머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것을 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의료사고였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 생각해 원망심을 두지 않았고, 법적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소 이전 소식은 참 걱정스러웠어요. 이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 평생 해온 일이 이일인데. 그렇지만 회사에 대한 원망심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의 직장에서 큰 배려를 해주게 됐다. "병원비용을 모두 회사에서 지원해 줬고, 그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개발팀에 남아 총괄 관리직을 맡게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그의 성실함과 그동안의 노력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려운 시기의 그를 끝까지 책임졌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마련해 준 것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라 한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대한민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또 회사와 이 나라에 보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내려 했던 노력이 보람 됐었고, 지금도 개발기술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맡아 하게 됐으니 더 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오직 성실함으로 인정받은 모습이 진정한 그의 실력이 아닐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회의 발전에 힘써온 그가 진정 우리나라 산업 선진화의 주인공일 것이다.

[2018년 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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