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교전을 읽으면 늘 드는 의문이 있었다. 대종사 당시에는 법회를 예회라고 했는데, 왜, 언제부터 예회를 법회로 바꾸어 사용했을까. 〈정전〉 교당내왕시주의사항 5조에 예회라는 말이 처음으로 명시되어 있다. 

'매 예회(例會) 날에는 모든 일을 처결하여 놓고, 그날은 교당에 와서 공부에만 전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그리고 상시일기법 2조에 '학습 상황 중 수양과 연구의 각 과목은 그 시간 수를 계산하여 기재하며, 예회와 입선은 참석 여부를 대조 기재하는 것이요'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예회는 〈정전〉에 2번 나오는데 대신 '법회'라는 용어는 없다.

〈대종경〉에서는 '예회'는 교의품 27장에 이인의화 선진과 관련된 법문에서 나오고, 매우 잘 알려진 수행품 7장에 나오는 예회는 한 법문 안에 여러 번 쓰이고 있다. 수행품 8장 예회에선 대중들에게 돈 버는 방식에 대해, 수행품 25장은 예회의 공덕에 대해 말씀했다. 〈대종경〉 교단품 33장 예회에서는 교단의 창조자와 파괴자에 대하여 말씀했고, 끝으로 부촉품 14장에는 계미년 오월 십육일 예회에서의 설법을 담고 있다. 

법회라는 말은 교전 전체를 보아 딱 한 번 나오는데 전망품 26장에 있다. 동리 동리에 교당과 공회당을 세워 놓고 정례로 '법회'를 보게 되며, 법사의 '수시법회'나 회의가 있으면 거기에 모여 진행한다는 말씀이다. 

이런 사정인데도 '법회'라는 말은 현재 두루 사용되고 있고, 〈정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예회'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건 어떤 연유인가. 그것은 오늘날 '법회'가 '예회'를 대체했기 때문이 아니라 '법회'와 '예회'가 다르게 사용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법회'와 '예회'의 관계는 〈예전〉에 잘 기술되어 있다. 〈예전〉 교례편, '제3장 법회'에 보면, '법회는, 법을 강론하며 법을 훈련하며 기타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하는 법의 모임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법회' 안에 정례법회, 수시법회가 있고, 정례법회 안에 월례법회, 연례법회가 있으며, 월례법회 안에 예회와 야회가 있다. '법의 모임'을 통칭한 것이 '법회'라면,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법의 모임'은 '예회'인 것이다. 

야회(夜會)는 저녁(밤)에 보는 월례법회이다. 낮에 보는 월례법회는 '예회'라 하고, 밤에 보는 월례법회를 '야회'라 한다. '일요 예회'에 '수요 야회'가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일요 법회'라고 하는 건 정확한 용법이 아니다.(개교한 지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런 정확성이 많이 부족하다. 아직도 '길룡'을 '길용'이라 하고, '신룡'을 '신용'이라 하고 있다.) 마땅히 '일요 예회' 또는 '예회'라 해야 한다. 

정산종사는 '예회나 야회(법회라고 하지 않았다)는 우리 정신의 양식을 장만하는 특수한 날이니, 생활의 복잡에 사로잡혀 혹 등한한 생각이 나거든 본래 목적에 반조하여 끊임없는 정성으로 참석할 것'(〈정산종사법어〉 무본편 25장)을 주문했는데, 대종사 당대부터 사용되어 온 '예회와 야회'를 회복해, 일단 매주 일요일 '법의 모임'에서 '예회'라는 말을 널리 사용했으면 한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9월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