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 /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이수자 양태숙 가야금병창
구연우, 강태홍, 박귀희 선생에게 가야금 사사
첫 제자인 딸 정경화 명창 키워내, 후진양성 매진

[원불교신문=최지현 기자] 전통 문화 보전과 발전이 강조되고 있는 현 시대에서 우리 음악인 '국악'을 교육하고 전승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더운 8월의 마지막 날, 국악 발전과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을 찾았다. 해운대교당 양태숙(법명 영신) 교도는 아름다운 가야금 음율을 선보이며 기자를 맞았다. 

"예술에 대한 남다른 의지가 있었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6살에 무용학원에서 춤을 배웠습니다. 아래로 여동생이 셋이 있는데 모두 무용학원에 함께 다녔죠. 학원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탐탁치 않아하셨고, 저보다 여러모로 출중한 동생들을 위해 무용을 포기했습니다. 그 뒤 우연히 13살에 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신명숙의 부군인 구연우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우게 됐고, 고3때는 강태홍 선생에게 성금련류 가야금산조를 배웠습니다."

23살, 결혼과 함께 가야금을 손에서 놓아야 했던 그는 일평생 다시 가야금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시댁에 들어가 살고 있었는데, 시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오는 날이면 가야금 연주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자주 가야금 연주를 해드리다보니 시아버지가 정식으로 가야금을 배우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당시 서울 여성국극단 '햇님달님'의 단장이었던 박귀희 선생을 찾아가라고 하셨고, 선생님에게 며느리를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편지를 직접 써주셨죠. 1978년 시아버지의 편지를 보고 감동한 박귀희 선생은 저를 제자로 받아들였고, 선생님 방에 함께 기거하며 다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매주 2박3일간 상경해 소리 공부를 하고 토요일 밤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일상은 쉽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경상도 발음은 쉽사리 고쳐지질 않았고, 그는 밤잠을 줄이며 연습에 매진했다. 

"생활비와 교통비, 교습비 일체를 지원해주신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돌봐주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잠을 줄여가며 연습했고, 부산에 내려와서는 배운 소리를 복습할 겸 4살 딸(정경화)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고, 1993년 박귀희 선생님이 타계하셨습니다. 스승님은 저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 수료증을 주셨습니다. 그 뒤 소리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 성우향, 조상현, 안숙선 선생님을 만나 다양한 판소리 기법도 전수받았습니다." 

가야금과 판소리 공부를 마친 그는 본격적으로 후진양성에 나섰다. 첫 제자는 그의 딸인 정경화 씨로 국악대전, 전주대사습 등 판소리대회에서 부산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장원을 차지했다.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한 정경화 명창은 2001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 및 국립극장 어린이창극단장을 역임했다. 또한 KBS 아침마당, MBC 얼씨구학당 고정 패널 등 각종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의 국악 관련 프로그램 MC도 맡았고, 판소리 다섯 마당을 퓨전화한 앨범 '정경화의 소리' 수록곡인 '토끼토끼'는 현재 중등교과서에도 실렸다. 

"첫 제자였던 딸이 이제는 저보다 더 큰 국악인이 됐습니다. 저는 부산교육대학교 교원연수원에서 판소리 외래교수 등을 하며 제자를 육성했고, 가야금 대회가 있으면 심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동생인 태순(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전수자), 태실(박병천 선생의 진도북춤 사사)과 함께 1992년부터 10년 동안 해오름전통예술단을 창단해 매년 가무악공연을 열어왔고, 남편과 딸, 아들과 함께 가족 사물놀이 발표회도 했어요."

가·무·악(歌·舞·樂)을 겸비한 전문국악단체 해오름전통예술단 대표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온 그가 원불교를 만나게 된 인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7년 전 딸이 WBS라디오 '국악은 POP이다'를 진행했습니다. 딸의 방송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매일 켜놓기 시작했는데, 방송을 통해 나오는 법문 말씀이 마음에 큰 감흥을 줬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저는 그렇게 원불교과 인연을 맺었고, 지금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운대교당에서 법회 후 장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최종 목표로 음악과 교법을 접목시킨 '마음치유사'를 꿈꾼다.

"교법을 공부하다보면 국악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인들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하는데, 원불교 마음공부가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2010년에 국악예술치료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마음공부와 국악을 접목시킨 예술치료를 통해 치매노인, 정신질환자 등 마음 안정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국악에는 인생의 희로애락, 조상의 정신과 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양태숙 교도. 소리의 맛과 멋을 자유롭게 엮어내는 그에게서 '국악'을 향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2018년 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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