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제도 보완하고 부족한 물질은 십시일반 모아
전체가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

[원불교신문=백인혁 교무] 초등학교 시절 달리기를 하면 꼴등은 언제나 나였다. 그래도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 잘 다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셨다. 아마 그때 내 부모님이 나를 '너는 병약해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지 몰라' 하셨다거나 '너 같은 것이 어떻게 달리기를 해'라는 등 나를 비하하거나 못할 거라는 단정적인 말씀을 하셨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똑같은 상황을 놓고 다른 사람들은 '저 애는 애초에 공부 머리는 없어 '아니면 저 애가 운동하는 것은 불가능해'라고 평가를 하지만 자식을 기르는 부모님이나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님들은 '지금은 저래도 언젠가는 잘할 수 있겠지!'라며 기다려 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 할 뿐이다. 

평가라는 것은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인재를 기르는 도구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배우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단련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함께 살아가는 동지들 사이에서 누구는 어째서 안 되고 누구는 무엇을 못 한다고 책망하는 것 등은 별 의미가 없다.

세간의 평가방법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해 누구나 쉽게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우리 교단 내에서도 만연해 일원대업 실현에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동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거나 불타는 신심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있다.

교단이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접하면 원불교 교도들은 누구라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간 배우고 갈고 닦았던 진리와 정법을 놓고 과거 종교를 따라 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줄을 세우고 편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이기려고만 할 것인가 잘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고 남의 좋은 것을 가져다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사람도 능력도 실력도 부족하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는 정해져 있다. 실력을 기르고 때를 기다리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능력을 갖추도록 우리가 서로서로 합력하고 격려하며 자기가 가진 능력을 모아 힘을 보태주면 된다. 그래서 일당백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닭벼슬도 벼슬이냐, 중 벼슬도 벼슬이냐' 하면서 우리 일꾼들을 비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난한 자에게 밥 한술이 소중하듯 우리에게 앞장서서 목숨 바쳐 일해줄 일꾼들이 소중하다. 비록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인물이 부족할지라도 일원 대도를 알고 일원 대업을 앞장서서 이끌어줄 사람들은 이 세상에 그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음공부 하는 수도인은 수도가 바쁘지 자리를 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선진 중 "나는 수위단원은 하지 않겠다"고 뿌리친 그분을 명예욕이 떨어진 대단한 분이라고 칭송할 수도 있겠지만 소임을 맡기면 그저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분들도 그분 못지않게 대단한 분들이다. 

그 자리에 올려놓고 부족한 면이 보이면 서로 채워주고 격려하여 맡은 바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지 그 사람의 자질을 탓하거나 공의로 만들어 놓은 절차를 탓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수도인의 자세는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치고 힘들 때면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처음 서원을 생각한다면 이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본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일해달라고 부탁해 놓고 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그렇고, 일꾼으로 다 부려먹고 나서 잘했니 잘못했니 탓한다면 누가 있어 그 자리를 맡아 목숨 바쳐 일할 것인가! 우리 일은 함께하는 것이지 일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육근을 사용할 때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는 연습을 밤낮없이 하고 사는 사람들이니 오매불망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데, 제도가 미흡하면 제도를 보완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보태고 물질이 부족하면 십시일반 물질을 보태주어 어떻게든 전체가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충북교구장

[2018년 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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