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평화마라토너 3차 응원단 다녀와서-

마라톤을 출발하기 전, 기도 올리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원불교신문=김도심 교무] 한반도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를 만나기 위해 원불교 응원단은 지난 5일~7일 중국 하북성 장자구시로 갔다. 첫날 밤늦게 도착한 탓에 다음날 새벽 5시에서야 호텔 로비에서 강명구(법명 진성․중곡교당) 교도를 만났다. 구릿빛으로 변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손을 맞잡은 순간, 그동안 그가 홀로 겪었을 어렵고 힘든 과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복받쳐 올라와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한참을 그렇게 붙잡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출발기도를 올린 후, 어제 달리기를 마친 그곳을 향해 차로 40여분을 또 달려갔다. 다시 그 출발선에서 기도를 올리고 몸의 예열을 위한 4km 걷기를 하며 응원단은 함께 걸으며 대화를 했다. 그는 오랜 일정에 심신이 바닥이 날 정도로 지쳐 있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의 특성상 외국인이 머물러야 하는 숙소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하루의 목표 42km를 마친 그곳에 머물 호텔이 없어 다시 차로 멀리 이동해 머물 곳을 찾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날 여지없이 또 그 길을 찾아가 일정을 시작해야 했다. 지친 몸으로 불필요한 오고감의 시간을 하는 수없이 버텨야 했다.

식사 또한 마찬가지다. 전날 저녁에 먹다 남긴 찬밥을 새벽에 혼자서 챙겨 먹고 5시 반에 호텔을 나서 또 다시 마라톤을 시작해야 하는 날들의 반복, 그 긴 여정 속에 몸은 얼마나 힘들었고 외로움 또한 얼마나 컸을까, 짐작조차 못한다.

그날은 청명한 가을 날씨에 조금은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달렸다. 원불교신문사 강법진 교무와 대구원음방송국 김원명 교무 그리고 우리들의 질문에 그는 오히려 조금씩 생기를 찾아갔다. 달리는 힘듦보다 외로움이 더 컸을 터, 그는 사람으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 듯했다.

그가 달리는 곁으로 괴물처럼 느껴지는 큰 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면 불안했다. 추월하는 차들의 역주행은 보통이고 2차선에서 3대가 나란히 달리기도 했다. 그나마 갓길이 넓은 곳은 괜찮은데 좁은 곳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11시경, 오전 달리기를 마치고 식당을 찾았다. 어느 곳이 조금 깨끗하고 맛있을까? 낯선 곳에서 먹는 즐거움을 위해 식당을 찾는 일은 기쁜 일이었다. 시골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식당은 찾았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서 메뉴를 선택할 때 애를 먹었지만 그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남은 밥은 내일 아침식사를 위해 포장했다.

점심식사 후,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수자원보호구역이라서 통과할 수 없다고 한다. 별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를 마라토너들은 아르바이트라고 한단다. 오늘은 응원단과 함께였지만 혼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되돌아가야 했다면 얼마나 팍팍했을까?

조금 지나니 터널이 나왔다. 차를 운전하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면 큰 트럭이 내뿜는 소음과 공포감이 만만치 않은데, 맨몸으로 뛰면서 듣는 터널 안의 소음은 마치 고막이 터지는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지친 몸은 뛴다는 느낌보다 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화 한 켤레로 3달을 신던 것이 요즘 그는 2달 밖에 못 신는다고 했다. 그래도 그동안 발이 깨끗했는데 이제는 발톱하나가 멍이 들었다고 보여준다.

3km까지는 이지철 교도님이 같이 뛰었다. 그리고 나머지 1km는 그 혼자서 뛰었다. 드디어 42km를 마무리하면서 몇 달만에 최고의 스피드를 냈다고 자랑하는 그를 보며 함께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그날은 한국의 어머니와 태국의 아내가 그를 응원하기 위해 중국으로 왔다. 그는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아내와의 만남은 2년이 넘었다고 했다. 저녁에는 북경교당의 교도회장님과 전 회장님, 그리고 봉공회장님과 서혜진 교무님이 와서 응원기도와 함께 저녁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우리 응원단과 북경교당 교도들은 그의 무사완주와 함께 체력 보강을 기원하며 보약과 선물을 전달했다. 마침 북경교당 전 회장님은 중의사여서 그의 건강진단도 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중국을 끝내고 북한으로 넘어가는 단동에서 4차 방문단이 도착하는 한 달 동안 뛸 수 있는 에너지를 드리고자 했다.

강명구님은 한 번도 북한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지나온 길이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는 길이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평화를 안고 달리고 있으니 강진성 교도님이 반드시 한국 땅에 평화를 불러올 것이다”고 염원했다.

마지막 응원의 날, 우리는 다시 전날 마라톤을 마친 그곳으로 이동을 했다. 이지철 교도님의 제안으로 차가 마련되기 전에 모든 짐을 실고 혼자 밀며 뛰었다는 2번째 유모차(첫 번째 유모차는 망가져서 베를린교당에 맡겼다)를 조립해 밀며 걸었다. 40㎞가 넘는 길을 혼자서 유모차를 밀며 뛰었다는 그는, 어느 날은 자면서 팔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마비가 생겨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낯선 땅에서 하루에 42km를 뛰는 것도 힘 드는데 70kg도 넘는 짐을 실은 유모차를 밀고 뛰면서 혼자서 먹는 것, 잠자리 등을 해결했어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지난 1년간 그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메달의 영광도 국민의 찬사도 없는 외로운 길을 그는 홀로 죽을힘을 다해 그렇게 뛰고 오고 있었다. 오직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이 순일하고 사념 없는 기도를 어째 법신불 사은이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월초면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단둥에 도착할 예정이다. 우리는 그를 응원하는 타 단체들과 함께 대규모 응원단을 꾸릴 예정이다. 단둥을 지나면 17개국 1만6천㎞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의 마지막 코스 북한에 진입하게 된다. 북한 당국의 허가를 위해 기도와 참여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부디 판문점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그 약속을 하고 또다시 그를 혼자 남겨두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오늘도 그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불제자 강진성의 기도에 응감하여 주시옵고 호념하여 주시옵소서! 그가 평화를 안고 건강한 모습으로 분단된 조국의 품으로 오게 하소서. 일심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첫날 새벽 출발기도
강명구 마라토너와 함께 뛰는 원불교 응원단.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그의 뒤에서 응원한다. 
그는 운동화 3켤레와 양말 2개로 매일 42km를 달린다.

 

/ 김도심 대구경북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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