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과 책임 부여해 선의의 경쟁과 상생 유도
과감하게 바꾸고 지킬 일은 온전히 지켜나가는 지도자

[원불교신문=정인화 교무] 이번 9.13수위단 선거와 종법사 선출이 보여준 결과는 우리가 처한 현실과 요구를 여실히 담고 있다. 그것은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인 동시에 '선진의 공도를 거스를 수 없다'는 순리를 담은 균형점의 확인이었다. 새로 선출된 수위단원들의 연대가 조화를 이뤘고 기존 수위단원과 총부 봉직자들이 적절히 포진한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제부터다.

아돌프 체르는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로써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밝혀줬다. 제왕적 권력의 분산을 표현한 말이다. 오늘날에도 영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는 국왕이 있지만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국회가 서로 견제와 협력으로 나라를 이끄는 통치구조다. 

만약, 이 제도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 종법사는 존경받는 우리 회상의 대표요, 스승이며 교정원장과 총부의 각 임원들은 총리와 내각이 되는 셈이다. 영국의 왕이 외빈을 맞이하거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중대한 국가의 대사를 조언하듯 종법사도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경험 많은 선진 원로들의 지혜와 뜻을 받들어 조언하고 교화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교육하고 이웃 종교인과 교류하고 사회의 소외된 곳을 챙기면 어떨까.

수위단은 기능이 국회와 비슷한데 우리는 장관들이 하는 국무위원의 기능을 수위단원이 하는가 하면 광역단체장이나 국책기관의 장까지 겸하고 있는 모양새다. 예컨데, 국회의원이 국회의 일도 많은데 장관에다가 서울시장이나 전북도지사를 겸임하다보니 업무가 너무 많게 되어 국회 일은 물론이려니와 국무와 도지사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종법사와 수위단이 잘 하려고 애를 써도 구조적으로 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지금의 여건에서는 일이 잘 될 수가 없다. 회의 참석하랴, 교구 챙기랴, 교당 신경쓰랴, 사람 만나랴 하다 보니 교화는 물론, 교육과 교당 운영이 제대로 돌아갈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위단 안에서만 교구장을 맡길 게 아니라 이번에 낙선한 수위단 후보들을 포함시켜 유능한 인재들을 나이와 법랍을 초월해서 교육과 교화, 경영능력을 지닌 사람을 면밀하게 평가, 선발해 교구 운영을 하면 어떨까. 동시에 인사권과 재정권 등 자율권을 높여 교구자치권을 강화해줌으로써 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고 선의의 경쟁과 상생을 유도하면 교구와 현장의 활력이 더욱 커지지 않을까. 단체나 기관의 대표도 재가 출가를 총망라해서 각 분야의 전문성과 역량을 고려해 인사를 함으로써 종교논리와 실제적 경영논리의 괴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갈등과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선거 때마다 우리는 많은 기대와 염원을 가져왔지만 결과는 늘 제자리였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고 염려하듯이 주변인들도 우리 내부를 더 많이 알고 있거나 적어도 느끼고는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마치 경계인처럼 서성인다. 딱히 문제는 없는데 막상 들어오라고 하면 주저한다. 언제부터인가 생동감을 잃고 있는 원불교의 현주소다. 왜일까, 그들에게 우리는 왠지 늙어 보이고 융통성 없이 과거에 치우쳐 보이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 만난 동료 교무가 한 말이 생각난다. "더 이상 교단에 기대할 게 없어요. 신앙도 교화도 이젠 각자도생하는 길밖에요" 자조섞인 이 말 속에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이 드리워져 있다.

입헌군주제의 의미는 군주는 있되, 법에 의해 통치하겠다는 뜻이다. 의원이나 왕 모두가 시민이 위임한 권력이므로 시민의 입장에서 법과 순리대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의 공의를 우선해 교법에 따라 교단을 운영하는 것이 정도다. 그래서 신임 종법사의 용기있는 결단과 수위단의 협력으로 정체된 교헌과 교법을 개정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됐으면 한다. 

법과 원칙도 사람이 약속하고 정하여 만들고 사람이 지킨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회상의 다수가 평균적으로 바라는 바를 통찰해 바꿀 것은 과감하게 바꾸고 지킬 일은 온전히 지켜나가는 우리들의 종법사와 수위단이 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바람이 아니리라.

/마산교당

[2018년 9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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