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십여 년 간 지켜온 신념이 한숨에 무너졌다. 14년 전, 좌선시간에 생긴 일이다. 모기 한 마리가 좌선을 방해한다. 윙윙~ 날아다니며 여기 물고 저기 물고,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모기를 냉큼 잡으리라 생각하고, 모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앉기만 해봐라.' 내 모든 세포가 깨어, 모기의 기척에 집중한다. 기다림의 끝, 드디어 앉았다. '탁!' 정적이 흐른다. 놓쳤다. 

고백하건데 나는, 타깃을 조준하는 일에 전혀 소질이 없다. '집중! 집중하자. 꼭 잡는다.' 다시 온 신경을 집중 한다. 고요한 선방에 모기 날개소리 뿐이다. '단 한방이면 된다.' 내려앉기만을 기다리며 정신을 칼날처럼 고누고 있던 나는, 문득 살기 가득한 스스로를 자각한다. 좌선 중이어서일까. 내가 품고 있던 생생한 살기가 반사되듯 온전히 느껴진다.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단 사실에 홀로 부끄러웠다. 

대종사의 법문이 떠올랐다. "자기 마음 가운데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이 풀어진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을 풀어 줄 수 있나니라."(〈대종경〉 요훈품 30장) 

나의 악한 기운과 독한 기운을 여실히 보았다. 그리고 그날 결심했다. 나의 기운을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쓰지는 않기로. 그날 이후, 나는 모기도 날파리도 돈벌레도 죽인 일이 없다. 소 닭 보듯, '어? 모기네' 할 뿐이다. '그이'를 만나기 전까지, 십여 년간 나의 신념은 굳건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훈련원에 와 그이를 만난다. 나의 그이, 애증의 그이는 바로 '지네'다.

사람 손가락보다 굵고, 내 한 뼘보다 긴 대왕지네들이 훈련원 곳곳에 출몰하곤 한다. 훈련원 직원들에겐 '지네에 물린 이야기'부터 '신은 신발 속에 지네 있던 이야기', '변기에 앉다가, 변기 안의 지네를 목격한 이야기'등 소름 돋는 지네와의 무용담이 존재한다. 

보고보고 또 봐도 지네는 적응이 안 된다. 지네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겠다며 인터넷에서 일부러 지네사진을 하루 종일 찾아 봤던 그 날, 밤새 지네 나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내 방 침대 옆에서 대왕지네를 목격한 대망의 그날엔, 살생을 안 하기는커녕! 괴성을 지르며 '분노의 살충제'를 마구 뿌렸다. 살충제에 지네가 푹 절여질 때까지 마구 분사하다, 손을 벌벌 떨며 기절한 지네를 죽였다. "지네는 두 마리가 같이 다닌다던데." 나는 그날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 침대에 모기장 바닥을 꿰맸다. 어느 한 구멍도 허락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촘촘히 박음질 하고 또 박음질하며 그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 날 이후 지네가 더 싫어졌다. 내 몸 어딘가에 지네가 기어 다닐 것 같았다. 또 어느 날엔 '잡은 지네'를 죽이지 않고, 화단에 버렸다는 도반의 말엔 버럭 화를 냈다. "죽여야지, 왜 살려줘요? 그냥 버리면 또 방에 들어 올 텐데. 왜 안 죽였어요. 왜!" 격하게 도반에게 화를 내다가, 내 안의 현자가 또르르 찾아온다. 살생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무너진 것도 괴로운데, 다른 누군가가 살생하지 않았다고 도리어 화를 내는 내 모습이란. '지네'도 싫고 '지네를 죽이는 나'도 싫고. 정말, 이 일을 어찌할꼬. 나의 고뇌, 나의 지네여.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9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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