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사회 현상과 삶 문제 고민하다 원불교 만나
〈아름다운 성자〉 읽고 소외받는 청소년층에 눈뜨게 돼

[원불교신문=신영윤 도무] 동산동이란 동네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중마을이다. 마을 뒤편은 운암산을 중심으로 산들이 병풍을 두르듯 펼쳐져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너른 들판과 실개천이 흐르고, 멀리 왼쪽으로는 팔영산이, 정면으로는 마복산, 천등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곳이다. 뒷산 운암산에는 수도암이 있었고, 팔영산에는 능가사가, 천등산에는 금탑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이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간간히 수도암에서 들려오는 새벽 종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호래야, 새벽 종소리에 너 이름소리가 들릴 것이니 잘 들어 보아라.'

어머니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수도암으로 소풍가는 날 범종에 새겨진 가족 이름을 보고, '너 이름이 세상천지로 퍼져나가니 큰 인물이 되어라'고 하신 어머니의 불심을 알게 됐다. 
대학 2학년 때 연애가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격동의 시기에 젊은 청춘들은 당시 사회 현상에 대해, 또 삶과 영혼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원불교를 신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존재, 인식, 가치를 고민하고, 철학·종교·과학·역사에 관심을 갖는 시기에 원불교 광주교당을 쳐들어갔다. 

노란 은행잎이 마당에 수북한 어느 가을날 오후, 어떤 분을 만나 대뜸 '원불교가 어떤 종교냐? 사이비 종교 아니냐?' 는 무례한 질문에 '원불교를 체험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1주일간 교당 생활을 하게 됐다. 청년 두 명(호영, 상술)과 함께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하는 교당체험을 했다.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시작한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 사직공원으로 해장하려 나오는 어른들과 합류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판을 짜 맞추는 나날들이었다. 1주일 교당 생활을 약속했고,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1주일 체험으로 하루 일과가 새로운 패턴으로 정리됐고, 이렇게 광주교당 청년회 활동이 시작됐다. 청년회 행사를 마치고 막걸리 한잔으로 뒷풀이할 때면 스포츠머리의 젊은 한 친구가 새벽에 종쳐야 한다고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그 스포츠머리 젊은 친구는 정상덕 교무님, 당시 눈이 부셔 바라보기도 어려운 청초한 부교무는  민성효 교무님이었다. 

대학 졸업 후 소록도가 있는 고흥 녹동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교당생활을 못하고 청년회활동을 그리워하고 있을 때, 시골 읍내에서 검정치마 흰저고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녹동교당 신축을 위해 분주한 오은도 교무님이었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대단한 그 열정에 감동 받았다. 읍내에서 지나가는 교무님 승용차만 봐도 기뻤다. 고흥에 살면서도 소록도는 무섭고 터부시 되는 곳이었다. 

소록도교당에서 여성회·회장단 훈련이 있었고, 그때 김혜심 교무님과 소록도 교당의 역사를 알게 됐다. 이미 출발해 소록도로 가는 배를 향해 '야, 같이 가자'소리쳐 배를 돌린 이운숙 교무님도 이 때 뵙게 됐다. 

개척 녹동교당에서 재미있었다. 여수교당 인연으로 녹동교당이 봉불되고, 오교무님은 진문철 교무님과 함께 모스크바교당으로 착출돼 갔다. 후임으로 이심진 교무님이 부임했다. 이심진 교무님은 우리 가족이었다. 법회 출석인원은 우리 가족 네 명. 아빠는 사회, 딸은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법회 마치고, 점심 먹고 근처로 놀려가고, 우리 가족은 교무님을 독차지 하고 살았다. 

원광대 광주한방병원과 함께 한방 의료봉사를 하게 됐다. 청년회 활동 때 기억을 되살려 지역 주민들에게 원불교를 알리고 싶었다. 행사를 알리기 위해 안내장을 전봇대에 붙이고,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문구를 넣은 기념품 수건도 만들었다. 공사없이 수건을 만들었다고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원불교는 병원도 있고, 부자교단이라는 것을 알리는 행사가 되었다. 교무님에게 원불교 대안교육 이야기를 들었고, 석존성탄절에 설교하러 온 김현 교무님을 녹동교당에서 뵙기도 했다.

이심진 교무님이 내밀어준 〈아름다운 성자〉라는 책으로 길광호 교무를 만났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은 청소년, 그늘진 곳의 청소년, 그들과 함께하는 이들을 만나게 됐다.

/한겨레중·고등학교

[2018년 10월5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