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서품' 9장에서는 "공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생긴 것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시험하심인 듯하니 그대들은 조금도 이에 끌리지 말고 또는 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지도 말라.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이치의 당연함이어니와 혹 우리의 노력한 바가 저 사람의 소유로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 있어서는 양심에 부끄러울 바가 없으며, 또는 우리의 본의가 항상 공중을 위하여 활동하기로 한 바인데 (중략) 이 때에 있어서 그대들은 자타의 관념을 초월하고 오직 공중을 위하는 본의로만 부지런히 힘쓴다면 일은 자연 바른 대로 해결되리라"라고 했다.

즉, 분쟁을 대할 때, 먼저 하늘이 우리의 정성을 보는 것으로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다음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이치의 당연함임을 믿고, 또 나의 본의는 항상 공중을 위한 것인지 살피고, 공중을 위한 본의에 힘쓴다면 바른 대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주역〉에서 분쟁을 논한 6째 괘인 천수송괘(天水訟卦)와 만나게 된다. 괘사(卦辭)에서는 '송(訟)은 자신의 양심에 믿음이 있지만, 막히고 근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를 지키는 것이 길하고, 끝까지 마치려고 하면 흉하게 된다'고 했다.

대상사(大象辭)에서는 '하늘과 물이 서로 어긋나서 행하는 것이 송괘(訟卦)로, 군자는 '일을 지은 처음의 뜻을 도모해야 한다.(작사모시, 作事謀始)'고 해, 송사에는 그 일을 시작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근본적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이웃 사람이 간석지를 자기의 땅으로 만들려고 분쟁을 벌이자, '우리의 이 일을 하는 본의가 공중에 이익을 주기 위한 일'임을 말씀한 것과 만나게 되어, 〈주역〉의 '작사모시'가 〈대종경〉으로 풀어지게 된다.

초효에서는 '일을 하다 보면 좋지 않고, 사람들의 말이 조금 있지만 밝게 분별하기 때문에 마침내는 길(吉)하다고 하고, 송사는 길게 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또 이효에서는 송사를 할 수 없을 때는 '마음의 닦음으로 돌아가고 달아나는(귀이포, 歸而逋)' 방법을 알려주고, 사효에서도 송사를 할 수 없을 때는 마음을 바꾸어 '하늘의 뜻을 헤아려 본성으로 돌아가면(복즉명, 復卽命)' 정도(正道)에서 편안할 것이라 했다. 

송사할 송(訟)은 언(言)과 공변될 공(公)으로, 말씀을 공변되게 하는 것이다. 즉, 송사는 성인의 말씀에 따라 공중을 위한 마음인지를 헤아리는 일이라 하겠다.

마음공부의 입장에서 송괘는 2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내 마음에서 성인의 말씀에 송사를 벌이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가 맞는지, 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묻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의 경계에서 성인의 말씀인 도덕으로 살아갈 것인가, 탐욕심으로 살아갈 것인가, 벌이는 송사이다. 전자의 송사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굳어지는 과정이고, 후자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한 송사이다. 이에 '서품' 9장을 우리의 마음공부에 대조해보고, 나는 어떠한 송사를 벌이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8년 10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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