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오늘은 하지 맙시다. 오늘은 걷던 쪽으로 한걸음 더."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격동의 시대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눈 두 남녀의 비극적 이야기. 이쯤 마음먹고 보던 드라마였다. 초반, 정확히는 드라마 속 세 남자에 마음이 끌렸다. 군더더기 없는 대사는 서로를 향한 애틋하고 애달픈 마음의 깊이를 더했고, 눈빛과 몸짓으로 전달되는 무언의 의미는 충분히 묵직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내 짐작을 벗어났다. 구한말 혼돈의 시대를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결국 '아무개' 의병들이었다. 드라마는 중반 이후 의병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자신을 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하고,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총을 들었다. 

거점이 발각되자 의병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게 해주려고 기꺼이 미끼를 자처하는 민초 '아무개'들. 생애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움을 떨쳐내는 그들은 늘 웃는다. '평생 못 해본 말 한번 해보자'며 노비로 살아온 서러움과, 서러움을 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오래 기억될 명장면이다. 

엔딩 장면 속 구한말 의병사진. 그 오래되고 낡은 사진 한 장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거리의 '아무개'인 줄 알았던 이들은 왜 의병이어야 했는가. 저물어 가는 조선에서 무엇 때문에 총을 들어야 하는가.

'두려움 없는 걸음의 무게'는 결국 목숨을 건 투쟁이었고, 끈질긴 저항이었다. 조선의 주권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불꽃처럼 뜨거웠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오직 '의병'.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던진 메시지는 이제 각자 몫으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아무개'들이 있어 역사를 이어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으로 살아가지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들. 

분명 교단도, 교당도 그 '아무개'들의 힘으로 이어져 왔다. 공심으로 교법을 실천하며 불사합력을 일궈가는 리더도, 구인선진의 법인정신을 체 받으며 기도정성을 이어오는 속 깊은 공부인도, 재난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솔선하는 봉공인도, 미래와 희망의 청소년을 키워가는 교화자도, 물설고 낯설은 해외에서 일심 정성 교화에 매진하는 해외교역자도, 오직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교단의 '아무개'들 일 터. 교단은 이들의 힘으로 앞으로도 꿋꿋하게 이어져 갈 것이다.

만주에서 의병을 지휘하는 애신의 말로 글의 끝을 맺는다.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 다시 타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2018년 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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