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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교무의 대종경 공부 실시품 32장. 슬픔 속에서도 여여한 자리
이지은 교무의 대종경 공부 실시품 32장. 슬픔 속에서도 여여한 자리
  • 이지은 교무
  • 승인 2018.10.19
  • 호수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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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일 것이다. 어버이를 여읜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하여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하고, 형제자매를 잃는 슬픔은 몸의 반이 떨어지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비유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하다 하여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하는 그 슬픔의 실체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도 차자 광령을 병으로 잃는 슬픔을 겪었다. 광령은 당시 이리 농림학교 재학 중, 스무살 나이로 요절했다. 대종사는 광령이 병고를 겪을 때 집안사람으로 하여금 힘을 다해 간호하게 했고, 그가 요절하자 말하기를 "오직 인사를 다할 따름이요, 마침내 인력으로 좌우하지 못할 것은 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공사나 법설 하는 모습이 조금도 평시와 다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매정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광령은 공사에 바쁜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오직 어머니의 사랑만 받다가 죽었다. 어머니인 양하운 대사모가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울자 대종사는 대각전 종을 떼어와 울리라 하며, "영가는 쇳소리에 각성하나니 광령은 수양한 바가 없고, 졸지에 열반을 하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크리라. 애착이 많으면 영이 높이 솟아오르지 못하고, 주변에 인도 수생할 인연이 닿지 아니하면 악도를 면하기 어려우니라"고 법문한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마치 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나온 것과 같다고 했다. 숨 한번 들었다 내쉬었다, 눈 한번 떴다 감았다 한 것과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것을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내가 일을 당하면 사무치는 슬픔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사의 이치를 확연히 깨친 성자는, 우는 것이 떠나간 영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오직 그 천도를 기원할 뿐이다. 각자가 타고난 업과 명은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살아생전에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간호를 다하되, 아들의 열반 후에는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죽고, 병들고,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인생사는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그 속에서 중생은 애착(愛着)과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따라 살아간다. 좋은 사람 만나면 좋아 죽겠고, 싫은 사람 만나면 미워 죽겠다. 너무 좋아도 고(苦)가 따르고, 너무 싫어도 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생은 고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며, 환경의 영향,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존재다. 그런데 깨달은 성인들은, 그 모든 인생의 풍파가 가져오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리가 우리 불성에 있음을 가르친다. 차자 광령의 죽음을 대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모습과 법문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자리가 내 마음에도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갖게 된다.

중생의 눈으로 보면 인간적이지 않다고도 할 만하나, 부처의 눈으로 보면 참이고 사실인 그 자리, 그 모든 착심이 주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그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로 큰 원력을 세우자. 

/미주총부법인

[2018년 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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