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인이 최후까지 버리지 못하는 속박은 
수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제자가 최후까지 버리지 못하는 속박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예수가 최후까지 버리지 못했던 속박은
하나님이다. 

최후의 단계는 그 속박을 깨버리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는 말이 그 뜻이다.
목불을 아궁이에 넣고 볼기짝을 데우던 
스님은 부처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아버지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를 
세 번 외치고 '다 이루었다'하며 죽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다.

누군가 동그라미 그 자체가 진리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성품이, 우리 자신이 일원상인 줄 알아야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일원상이라는 속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대종사는
'원래에 분별 주착이 없는 각자의 성품을 오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 어떤 성스러운 것이라도 성품의 자리에서는 분별 주착이다.

아, 나는 대종사의 말씀에 속박되어 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직 최후의 단계가 아니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했으니
대종사 말씀에 철저히 속박되어 살아갈 것이다.  

/삼동청소년회 법인사무처

[2018년 11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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