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한글 창제 572돌인 올해 한글날 특집으로 KBS에서 다큐 '이상한 한글 나라의 엘리트'를 방송했다. 우리나라 행정, 사법,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가 너무 어려워 일반 대중은 도무지 접근하기 어려운 실태를 보여주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다큐였다. 공공언어가 어렵다고 느끼는 국민이 85%나 된다고 하니, 어려움의 정도가 이토록 극심하다면 그 언어는 21세기 '외계어'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실 문맹률이 1% 남짓 될 정도로 매우 낮지만 이런 공공언어에 대한 해독 능력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문맹률은 훨씬 더 높다고 봐야 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쉽고 아름다운 한글을 형편없이 사용한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로써 또 다른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다. 비록 글은 한글로 표기돼 있지만 그 말은 결코 우리말이 아닌 것이다. 

한글은 참으로 대단한 글자이다. 창제한 동기도 거룩하지만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유일한 글자이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일본어는 300개 정도의 소리를, 중국어는 400개 정도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으나 한글은 무려 9,000개가량의 소리를 표기할 수 있으니 이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얼마나 탁월한 문자인가.

이렇게 거룩한 한글로 누구나 알기 쉬운 경전을 잣는 일 또한 참으로 거룩하다. 원불교  초간 경전을 한글로 지은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표기는 한글이지만 아직도 여전한 한자어의 위력으로 한글의 탁월성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면은 아쉽다. 정녕 다가오는 한글세대와 디지털 세대에 맞게끔 경전을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예를 들면, 원불교 경전의 표지글인 '圓佛敎全書'를 '원불교전서'로 바꿀 수는 없을까. 교리도의 한자를 한글로 바꾼 한글 교리도는 안 되는 걸까. 일원상서원문에서 '능이성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무상(無常)하여'와 같은 한문 구절을 우리말법으로 고칠 수는 없을까.

또 한 예로, '천도라 함은 영가(靈駕)로 하여금 이고득락(離苦得樂)케 하며, 지악수선(止惡修善)케 하며, 전미개오(轉迷開悟)케 하는 것이니,'(<정산종사법어> 생사편 6장)와 같은 구절을 '천도라 함은 영가로 하여금 괴로움을 벗어나 낙을 얻게 하며, 악을 그치고 선을 닦게 하며, 어리석음을 돌려 깨달음을 열게 하는 것이니'로 쓰면 안 되는 걸까. 물론 성현이 내신 법문을 문자와 상관없이 한 글자도 거스를 수 없다 하겠지만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전망품 3장) 아름답고 쉬운 말로 다듬어 편찬하는 것을 어찌 다만 불경하다 할까. 이미 불교 조계종에서는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외고 있지 않은가.

대표적인 한글 예찬론자인 미국 매릴랜드 대학교 로버트 램지 교수는 한글 창제와 관련해 '문자 해독 능력이 기득권층에 위협이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까지 글을 읽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글 창제의 보편적인 의미가 있고, 인간 지성의 두드러진 업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남녀노소 선악귀천을 막론하고 균등 세상을 추구했던 대종사의 경륜과 그대로 일치하지 아니한가. 

[2018년 11월2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