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화, 시공간 초월·무한 전파·시청각자료
사리연구로 디지털교화 연구하자

[원불교신문=허인성 교도] 인간은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있다. 그 시기는 다 다르다. 누구는 밤에, 누구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누구는 죽을 때 돌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늘 세상 돌아가는 이치 속에서 내 자신을 찾고, 나를 어떻게 써먹어야 결국 내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요즘 디지털 교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다.

디지털교화란 무엇인가. 이전 칼럼에서 사이버 세상에서 교화보다는 디지털을 활용한 교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것은 큰 방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작은 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디지털교화의 본질은 교화일 것이다. 교화란 무엇일까? 가르쳐서, 깨닫게 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서 결국 조화롭게 살아가는 낙원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미 가르치기 위한, 깨닫게 하기 위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일원상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신앙문, 진공묘유의 수행문이 그것이다. 상시훈련과 정기훈련 또한 그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교화가 다른 교화와 다른 점은 무얼까? 그 특징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지금 만든 것이 수십, 수백년 후에도 써먹을 수 있다. 이전에 만든 것도 지금 당장 보고 배울 수 있다. 어제 대사식이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됐다. 세계 어디서나 유튜브로 종법사의 이·취임하는 대사식 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무한히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복제를 하더라도 손실이 거의 없다. 게다가 오프라인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으로 전파할 수 있다. 수천 수만의 노력을 몇 번의 타이핑이나 클릭으로 구현이 가능하다. 이것은 엄청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청각 자료라는 점이다. 다양한 글과 그림, 동영상까지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창작해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비단 글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로 얼마나 많은 것을 접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세대는 디지털 세대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디지털교화를 잘하지는 못하고 있다. 시대를 잘 읽어야 함에도 시대에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야 한다. 후천개벽의 큰 법을 우리 몇몇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종사께도 죄송한 일이다.

익히 공부했던 사리연구로 디지털교화를 연구해보자. 디지털 교화 속에서 대소유무의 이치를 알 수 있다. 일원상과 신앙문, 수행문은 큰 자리요, 상시 및 정기훈련은 작은 자리요, 수많은 법문과 지금까지 만들었던 디지털화된 책자나 영상, 그림 등은 눈에 보이는 자리요, 그것을 만들고난 경험이나 노하우, 지식, 그리고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관계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이다.

대종사는 사리연구 장에서 "이 세상은 대소 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했다. 또한 이를 잘 알지 못하면 어리석다 했다.

우리는 그동안 디지털을 활용함에 있어 눈에 보이는 것에만 교화를 치중하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 즉, 수많은 자료를 만들고, 정리하고, 전파하려 했던 귀한 경험과 운영 지식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했다. 이것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자 우리가 앞으로 많이 챙겨야 할 불공의 대상이다.

그 무자리는 다시 유자리로 돌고 돈다. 그러면서 유와 무의 경계가 없어진다. 훌륭한 콘텐츠(대자리와 소자리)를 데이터화(유자리)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무자리) 하자. 그동안 중요하게 보지 않던 '적절한 홍보'가 반드시 필요하며, 새부처님의 크신 뜻을 잘 전파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 주에 거룩한 대사식이 거행됐다. 경산종법사께서 12년간 교단을 잘 이끌어주신 후 전산종법사에게 그 법통을 넘겼다. 이 과정을 보면서 어찌 흐뭇해 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전산종법사가 취임법문에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하자"했다. 나는 이 법문을 "내가 먼저 깨닫고, 시대에 맞는 교화 방편으로, 서로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들었다. 시대에 맞는 교화방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릉교당

[2018년 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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