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기훈련 중에 기록하는 일기가 정기일기다. 그 핵심은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이다. 심신작용은 인과의 법칙을 자기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일의 주종·선후·본말과 시비이해를 잘 파악하여 실천했는가라는 자기반성을 불러낸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인 의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다.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인과를 어떻게 삶 속에서 잘 활용했는가, 하는 점이 요체다. 

예를 들어 보자. 맛있는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한 알의 사과 씨앗을 땅에 심어야 한다. 그 씨앗 속에는 사과라는 인(因)이 들어 있다. 이 씨앗은 틀림없이 품종에 따라 싹을 틔우고, 나무로 성장해 예정된 사과를 열매 맺게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연이 개입돼야 한다. 좋은 토양과 날씨, 풍부한 거름, 적절한 가지치기와 솎아내기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주종·선후·본말과 시비이해는 이러한 전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진실한 수행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육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을 깊이 자각할 때 비로소 그 수행의 열매가 드러난다. 과거와 현재의 처지가 어떠한 형태로 놓여있을지라도 나의 심신작용에 따라 운명은 바뀐다. 소위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운명을 '인연과'의 원칙에 따라 더욱 깊이 성숙시키고, 더욱 높이 도약하도록 수승한 인연을 끊임없이 엮어왔기 때문이다. 심신작용은 계절의 변화처럼 일의 순서를 잘 파악하고, 자신과 세계를 유익 주는 길로써 정의와 중도에 따른 가치판단 하에 육근문을 개폐하는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성자들의 길이다.  

감각감상은 대소유무의 이치, 의두 또는 성리연마를 통해 얻은 소득을 말한다. 삶의 지혜를 계발하기 위한 것이다. 인생은 법신불의 진리에 뿌리박고 있다. 태양계의 중심이 태양인 것처럼, 우리 몸과 마음의 중심이자 처음과 끝인 불성은 육근의 원천이다. 낮이든 밤이든 태양의 밝음과 온기와 에너지를 흡수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 모든 존재가 태양의 은혜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듯이 모든 생명의 원천은 법신불의 은혜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어떤 일을 해도 범부의 행위가 된다. 

우리가 품고 있는 이러한 진리적 속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해 견지한다면, 누구라도 바로 지금 부처의 마음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감각감상은 이러한 경지로 가는 일상의 깨달음이다. 전자는 돈오, 후자는 점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깨달음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돈오와 점수는 일생동안 교차한다. 감각감상은 어떠한 삶일지라도 골짜기 물이 마침내 대해로 나아가듯, 본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존재의 원초적 본능이다. 

그 결과, 세계는 진리의 운행법칙인 대소유무의 이치로 돌아가고 있으며, 나는 근본적으로 법신불과 하나인 본각(本覺, 원래부터 깨달아 있는 상태)적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다.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은 사실적 도덕의 훈련 내용을 잘 보여준다. 정기일기를 통해 인연과를 자유롭게 굴리고, 진공묘유의 깨달음의 감각을 확인해 나가게 된다. 세계의 근원이자 전 존재의 화현인 법신불은 이처럼 나를 통해 자신의 생생한 의지가 담긴 우주적 드라마를 연출한다.

/원광대학교

[2018년 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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