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특정한 숫자가 나오는 게임을 할 때, 다수의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그 이상한 행동이란 작은 수가 나와야 이기는 게임에서는 주사위를 던지는 동작을 작게 하여 살살 던지는 경향이 있고, 큰 수가 나와야 이기는 게임에서 동작을 크게 하여 주사위를 강하게 던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던지는 동작의 크기와 나오는 숫자가 전혀 상관이 없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행동하는데, 어떤 행동을 특정 결과와 연결 짓는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착각적 통제감'이라고 한다.

게임뿐 아니라 삶 속에서도 그러하다. 큰 목표를 세운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과 수단까지도 커야 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목표가 크다 해서 반드시 수단도 커야 한다는 것은 착각이고 비현실적인 관념일 뿐이다. 아무리 큰 목표를 설정해 놓아도 작은 실천이 없으면 제대로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경향성을 극복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이소성대(以小成大)'(<대종경> 교단품 30장)이다.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이룸'이 '천리의 원칙'이다.

특히 수행품에 '작은 실천'을 강조하는 법문들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생각 나는 즉시로 초범 월성의 큰 지혜를 얻으려 하나 그것은 크게 어긋한 생각'이며, '저 큰 바다의 물도 작은 방울이 합하여 이룬 것이요, 산야의 대지도 작은 먼지가 합한 것'이라, '큰 공부에 뜻하고 큰일을 착수한 사람은 먼저 마땅히 작은 일부터 공을 쌓기 시작하여야' 한다고 했다.(수행품 44장) 공을 쌓기 시작해야 하는 '작은 일'은 무엇일까. 비유한 것처럼 '(물)방울' 같이, '먼지' 같이 작은 것일까. 

수행품 32장에서 그 '작은 일'을 엿볼 수 있다. 한 제자가 급히 밥을 먹으며 자주 말을 하는지라 '사람이 밥 하나 먹고 말 한 마디 하는 데에도 공부가 있나니', '밥 하나 먹고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작은 일이라 하여 어찌 방심하리요.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공부할 기회가 이르렀다 하여 그 일 그 일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재미를 삼나니, 그대도 이 공부에 뜻을 두라.' 사뭇 간곡한 이 말씀은 작은 일이라고 방심하며 심신을 함부로 사용하는 바를 경계한 말이지만, 큰일과 작은 일이 근본적으로 차별 없음을 아울러 말하고 있다.

또한 신문 읽기에 집착하는 제자에게 '내가 이러한 작은 일에 너를 경계하는 것은 너에게 정신이 끌리는 실상을 잡아 보이는 것'이니, '항상 정당한 도리만 밟아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수행품 20장)이 되라고 당부할 때도, 모름지기 '큰일'은 '작은 일'을 통해 성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종사는 '고금 천하에 다시 없는 큰 도덕'(실시품 44장)을 내 놓은 성자인데도 수행에서는 매우 세밀하여, '큰 뜻을 세우고 공부하는 사람'이 '극히 미미한 마음 경계 몇 가지'로 '그 발원을 막고' 탈이 나지 않도록 했다.(교단품 20장) 크게 가진 포부도 좋지만 다만 선언에 그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한 걸음'의 소중함을 일러주셨다. 오늘도 대종사 말씀하신다. '그대도 이 공부에 뜻을 두라.'

/원경고등학교

[2018년 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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