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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 "방사능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아요"
[전문인] "방사능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아요"
  • 나세윤
  • 승인 2018.11.14
  • 호수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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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 /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김신우 소장
영산성지, 한빛원전과 7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세계핵사고사〉 〈땅이 운다〉 출판, 핵발전 위험 전파

[원불교신문=나세윤] "전문인 취재 관계로 만나고 싶습니다." "네. 경찰이라고요. 어디 서인가요." 동문서답의 대화가 오간 뒤, 기자라고 찬찬히 소개했다. 그제야 "회원들이 핵폐기물 깡통(모형)을 청와대와 정부청사, 관공서 등에 보냈더니 경찰서에서 요즘도 전화가 옵니다"라고 놀란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 2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7주기를 앞두고 원불교환경연대 회원들이 핵폐기물 마크가 붙은 노란색 깡통에 핵폐기물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동봉해 보냈던 것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 경위다.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김신우 소장. 김 소장이 탈핵정보연구소를 설립하게 된 계기는 2015년 일본 정부가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려 할 무렵이다. 
"원불교환경연대도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해 총리 관저를 둘러싸는 금요시위에 참석했죠. 이 시위를 주도한 일본시민단체는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이라는 연구소를 40여 년 전에 만들어 핵 발전의 실상을 알려왔던 곳입니다."

그는 시위대 규모보다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이라는 연구소에 주목했다. 한참 부럽다는 말을 계속하자 함께 갔던 강해윤 교무가 "그럼, 우리도 이런 연구소를 작게나마 출범해 봅시다"라고 제안해, 못 이긴 척 덜컥 승낙하고 말았단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것이 탈핵정보연구소(2015년)였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를 보면, 과연 원불교환경연대 이전에 어떤 활동을 했을까 궁금해질 법하다. 

"여행사에서 11년 정도 근무했지요. 한국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가이드 했는데, 시간이 날 때는 부산환경연합운동에 가입해 강의도 듣고, 행사에 참여하는 등 환경에 관심이 많았죠. 1994년 12월24일, 정부는 핵폐기장 후보지를 발표합니다. 정부는 발표 1년 전부터 홍보활동에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지요." 당시 그랬다. 유명 배우를 앞세워 깨끗한 미래 에너지, 꿈의 에너지라고 방송과 신문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심지어는 한국전력에서 원자력의 달을 지정할 정도였고, 핵폐기장을 원전수거물관리센터 등 거부감이 나지 않도록 용어 포장을 시작했던 시기가 이때쯤이다. 

"환경단체 회원들과 94년 4월과 8월 히로시마 국제행사에 갔지요. 여행만 전문적으로 통역하던 나에게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용어 등 내용이 이해가 안될 뿐 아니라, 히로시마 원수폭대회(원자력+수소폭탄)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은 한국에서 그해 10월 열린 반핵아시아포럼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한국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돌아보게 됐는데, 이게 꿈의 에너지가 아니라 절망의 에너지인 거죠."

그는 1986년 4월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지구 북반구에 핵 띠가 형성될 정도로 방사능이 나왔다고 역설하며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렸다. 그렇게 나온 핵물질, 방사능은 한국이나 일본 표고버섯에서 세슘으로 검출된다고. 표고버섯은 다른 식물에 비해 세슘을 가장 민감하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오늘 영광에서 증기발생기(원자로 핵심 부품)를 교체하겠다고 했습니다. 통째로 바꾸는 데 8,000억원이 드는데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독점하고 있는 두산중공업만 좋아할 겁니다. 교체는 돔 벽을 뚫어 배관작업을 해야 하는 굉장히 험난한 공사죠. 왜 증기발생기가 치명적이냐면, 물을 끓여 중탕에서 터빈을 돌리는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증기발생기 관이 얇아야 해요. 증기의 엄청난 압력을 견뎌야 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원전 1기당 6000개 정도의 관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관 하나씩을 폐쇄하는데 이때 원전 폭발의 위험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일반 망치가 증기발생기 주변에서 발견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고. 마치 의사가 수술도구를 환자 배 속에 넣고 봉합수술을 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일본 1인 대안언론으로 불리는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히로세 다카시 선생을 모시고 전국 순회 강연을 다녔던 때입니다. 히로세 다카시 강의록 〈땅이 운다〉를 올해 4월에 제가 옮기고 엮어서 출판했죠. 또 '탈핵 할매가 간다'는 80세가 넘은 일본 반핵운동가 할머니들이 원전 후보지로 거론된 삼척을 방문해 연대활동을 했던 기억도 나네요. 후쿠시마 청소년들을 서울과 삼척에서 1주일간 정양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지요." 

지난해 〈세계핵사고사〉를 발행하기도 했던 그에게 지속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물었다. "서울과 영광에서의 탈핵순례와 핵발전소 이제 그만 광화문 1인 시위, 이메일과 문자,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홍보활동에도 전념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탈핵레터도 보내고 있고요. 자체 네이버 밴드를 운영하면서 탈핵운동의 저변을 넓히고 있죠."

"방사능은 차별하지 않고, 영산성지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현재 우리나라 발전설비를 볼 때 핵발전소는 없어도 된다고 역설한다. 다른 지역보다 영산성지를 걱정하는 그의 눈빛에서 성지지킴이를 넘어 천지의 은혜를 실천하는 환경운동가로서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한빛원전은 영산성지와 직선거리로 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핵발전소에 무심했던 교도들도 그의 활동에 관심과 지지를 보낼 때가 됐다. 

[2018년 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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