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요법 1~3조, 택법관공·임운적지 모두 담겨있어
경계 이전 공부, 경계 이후 공부…둘 다 잘해야

[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공부는 근기따라 하는 것이다. 수상문정혜가 수상 즉, 일어난 마음의 모양을 따라 그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면 자성문정혜는 경계를 따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상문정혜는 택법관공(擇法觀空)이 그 강령으로 법을 택하여 공을 관하는 것이며, 자성문정혜는 임운적지(任運寂知)가 그 요체로 적지(寂知), 즉 본래 자성에 갊아있는 공적영지에 마음의 운전을 맡기는 공부이다.

<정전> 무시선법에서 마음의 고삐를 잡고 하는 공부가 전자의 공부라면 염두에 잊지 말고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는 공부가 후자의 공부이다. 두 공부가 다 견성 후의 공부이나 그 차이는 정과 혜에 순서를 취하고 안 취하는 차이다. 정혜가 둘이 아니어서 정혜쌍수이나 업장이 두터워 정혜쌍수가 잘 되지 않는 공부인들이 견성하지 못한 하열한 근기들이 행하는 법인 '먼저 적적함으로써 분별망상을 다스리고(定) 후에 성성함으로써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慧) 공부법'을 빌려 행하는 것이 수상문정혜다.

정산종사는 학인의 자성문정혜와 수상문 정혜에 대한 질문에 "경계를 대하되 정한 상 없음이 자성 정이요, 밝되 혜의 상 없음이 자성 혜며, 정을 닦되 정하는 상 있음이 수상문 정이요, 혜를 닦되 혜의 상 있음이 수상문 혜니라"고 했다. 개인적 생각이기는 하나 소위 '대종사의 법'에서 '~로써'를 약간 사투리 적이긴 하나 '~로서'로 바꾸어보면 수상문이 자성문으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일상수행의 요법 2조'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를 세우자'에서 대다수의 공부인들은 그 일어난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을 수단, 방법으로 하여(영역본에는 by) 자성의 혜를 세우자로 이해한다. 

만약 조사 '~로써'를 '~로서'로 바꾸어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서 자성의 혜를 세우자'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정산종사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어리석음을 없애야 할 것이니 그 방법은 먼저 명랑한 반야지를 회복해야 할 것이니라. 무엇보다 먼저 법설을 많이 듣고, 널리 선각자에게 묻기를 좋아하며, 의심을 걸어 깊이 생각하여 원래 어리석음이 없는 명랑한 자성을 생각하고 사모해서 천만경계, 백천업 가운데서 항상 상광현전이 되어… 이것이 곧 자성혜이니라'고 했는데, 이를보면 지금 경계따라 일어난 어리석음을 없게 하기 위해 법설을 많이 듣고 널리 선각자에게 묻기를 좋아하라는 뜻이 아님을 알수 있다. 

평소에 자성의 혜를 세워서 경계를 당하여 어리석지 아니하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하여 2조로 설명을 했지만 1조 해설에서는 염불과 좌선으로, 3조 해설에서는 계문과 솔성요론을 그 방법으로 말씀하시었으니 그 뜻은 같은 것이다.

<회보> 제50호 원기23년 12월호까지 있었던 '삼강령 팔조목'이 <회보> 제52호 원기24년 1월호부터는 '공부의 요도'라는 말로 바뀌면서 아래와 같이 바뀐다. 

1.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자. 심지가 요란하지 않이하게 하난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2. 모르는 것을 제거하고 아는 것을 양성하자. 심지가 어리석지 않이하게 하난 것으로써 자성의 혜를 세우자.  3. 이론만 하지 말고 실행을 양성하자. 심지가 그르지 않이하게 하난 것으로써 자성의 계를 세우자. 

'로써'를 '로서'로 바꾸어 이 법문이 의도하는 바를 음미해 보면 1.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는 것이나 경계를 당하면 요란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니 경계를 당하여 요란해지지 아니하도록(상시훈련과 정기훈련으로) 자성의 정 세우는 수양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2. 경계를 당하여 어리석어지지 아니하도록 (상시훈련과 정기훈련으로)자성의 혜 세우는 연구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3. 경계를 당하여 글러지지 아니하도록 (상시훈련과 정기훈련으로)자성의 계 세우는 취사공부를 부지런히 하자가 된다.

정산종사는 "대저, 이 삼학을 증득하고 보면 억지로 요란하려 해도 요란해지지 않고, 어리석으려 해도 어리석어지지 않고, 그르려 해도 글러지지가 않나니…'(<정산종사법설> 불교정전의해 10)라고 했다.

'로서'로 이해하여 요란해지지 않이하게 하는 공부는 자성문정혜가 되고 '로써'로 이해하여 요란해진 그 마음을 없게 하는 공부는 수상문 정혜라 하겠다. 

/남부민교당

[2018년 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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