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사람이 두루 원만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참 귀한 심법과 공심이 있는 사람인데, 용납성이 없어서 동지들과 화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민첩하게 일을 잘하나, 성질이 불같아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두루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데, 알고 보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기질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괜찮은 줄 알고 만난 사람에게서 그렇지 않은 면을 발견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가지고 있는 좋은 점까지 평가절하해서 폄하하기도 한다. "성실하고 착하면 뭐해. 계속 실수만 하는데." "센스 있고 똑똑하면 뭐해, 성격이 저런데…"이런 식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가운데 말만 하고 실행이 없음을 경계했으나, 그 말을 버리지 아니했고, 재주만 있고 덕 없음을 경계했으나 그 재주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에 방에 앉아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밥만 축낸다고 대중이 흉보는 제자를 두고 '그는 재색명리가 공한 도인이다'라고 인가했다. 부족한 점을 경계는 했지만, 그가 가진 귀한 자질은 살리고 드러냈던 것이다. 범부의 심법으로는 하기 어려운 도요, 모든 이를 귀한 부처로 보는 자비의 심안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취사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장점과 단점이 실은 둘이 아니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 보니, 부족한 부분도 있게 되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반면에 능한 부분도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 부족한 점을 포용해주는데 인색하다. 진나라 말기의 은사 황석공은 "지혜로운 자, 용기 있는 자, 재물을 탐하는 자, 우둔한 자를 고루 쓰라"고 했다. 지혜로운 자는 공을 세우기를 즐겨하고, 용기 있는 자는 자기 뜻을 행하기 좋아하고, 재물을 탐내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취하며, 우둔한 자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으니, 그 장점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성격을 문제 삼지 말고 대신 규율과 상벌을 분명히 하면, 각각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 목숨 바쳐 일한다는 논리이다.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용병술과 성불제중의 대의에 바탕한 불법은 근본적으로 그 목적과 방향이 다르지만, 이와 같이 인간성에 대한 통찰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원불교에서 '원만하다'라고 함은, 그저 성격이 덕스럽고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양, 연구, 취사 삼대력을 고루 갖추어 어느 한쪽도 부족함이 없음을 말한다. 덕과 지혜와 실행력을 두루 갖춘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 전생에 닦은 공덕으로 이렇게 원만한 인격을 잘 타고난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따라 길들인 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삶은 알고 보면, 패인 곳을 메우고, 치우친 것을 고루 펼쳐, 원만한 인격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인 듯하다. 이 여정에서 만나는 우리 도반들이여, 서로서로 잘난 점은 드러내주고, 부족한 점은 감싸고 혹은 바루어 주며, 사이좋게 함께 저 피안의 언덕으로 함께 가자. 

/미주총부법인

[2018년 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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