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에 자주력 얻지 못하면 천업을 면치 못해
우리 심중의 사상이 부서져야 지선에 이른다

[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학인이 정산종사께 여쭈었다. "음양이 상승하는 것과 같이 선악도 상승이 되어 반복하는 것입니까?" 정산종사 답하시기를 "제군의 말이 맞도다. 이 세상은 상생상극으로 조성이 되어 있나니, 이 상생상극의 이치는 풀잎에도 있고 짐승에게도 있고 사람에게도 있어서 상생의 인연으로 만난 물건은 서로 좋아하고 도와줄 것이나 상극의 인연으로 만난 물건은 서로 원수 같이 대하나니라. 우주로 말하더라도 죽은 물건이 아니요, 살아있는 물건이라 그러기에 심지어 똥 속에도 생생약동하는 기운이 있으므로 초목에 거름을 하면 잘되는 것이니라. 이것이 곧 음양지도(陰陽之道)로서 음양상승으로 될 때 상생상극이 되나니, 우리가 육도윤회를 할 때 선악업보를 받는 것이 이와 같나니라. 음이 극하면 일양시생(一陽始生)하여 차차 음은 밀리고 양이 세력을 잡는 것과 같이 선악도 꼭 이와 같이 되어 극히 선한 자가 변하여 악할 수 있고, 극히 악한 자가 선으로 변하여 선자가 될 수 있나니 이것이 천업(天業)이니라.' -<정산종사 법설> 9.<불교정전> 의해 9.일원상법어 中


인과의 체(體)가 성품이고, 성품의 운용이 인과란 말씀은 서로 바탕이 된다는 뜻으로 곧 둘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끝없이 돌고도는 일원상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말씀이니, 소태산 대종사가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다'는 대각일성과 같은 맥락이다. 강연히 나누어보면, 체(體)-상(相)-용(用)이요, 대-소-유무요, 진공-묘유-인과이지만 일원상의 진리는 하나다. 유상(有常), 무상(無常)이 서로 바탕해 일원상의 진리를 구성하고 있다.

정산종사의 말씀은 계속된다. "곧 극선자(極善者)가 그 선으로 인하여 사상(四相)이 다북 차 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니, 육도에 자주력을 얻지 못한 자는 아무리 선하다 하여도 결코 천업을 면치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사상이 공한 자라야 지선(至善)이니, 비하건대 저 허공이 본래는 한 점 구름도 없는 청정한 것과 같이 우리 심중에도 먼저 사상산(四相山)이 부서져야만 지선에 이르러 선악업보를 초월하고 육도를 자유로 하여 음양상승도 없나니라. 대저 이 우주는 한 기운이라, 그러기 때문에 살아있는 우주요, 산 우주이기 때문에 음양상승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되나니라."  

만약 바다 앞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밀려오는 파도를 하나 하나 받아 다른 곳으로 보낸다고 가정하면 밀려오는 파도를 다 받아내고 나면 거기에 바다는 없다. 같은 이치로 세세생생 태어나는 이 몸(나)을 죽이고(죽고) 죽이고(죽고) 또 죽여서(죽어서) 맨 마지막 몸까지 죽인다고(죽는다고) 가정하면 거기에 '나'는 없다.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생각), 마음(생각), 마음(생각)들을 없애고 없애고 없애서 맨 마지막까지 없앤다고 가정하면 거기에 마음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파도는 계속 밀려오고, 몸은 계속 태어나고,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왜 그런가? 어디에서 오는가? 파도, 몸, 생각은 각각 바다, 나, 마음의 용이며, 바다, 나, 마음은 각각 파도, 몸, 생각의 체가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의미에 부합되는 지경인가? 유는 반드시 무로 돌아갈 유임을 확실히 알고, 무는 반드시 유로 나타날 무임을 또한 확실히 깨쳐 알고 사는 것, 즉 여기가 구공 역시 구족자리요, 진공으로 체삼고 묘유로 용삼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한몸(한생) 한몸(한생)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다스려 사용해야 한다.

둥그신 그 체성이요, 둥그신 그 묘용이다. 체성으로 보면 언어의 길이 끊어졌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이나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자리이며, 또 묘용으로 보면 만사를 작용 할 때에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고 오직 바르게 마음을 작용함이니, 체성과 묘용이 둘이 아닌 하나로서 능히 체성이기도 하고 능히 묘용이기도 하다. 

때문에 교화란 이를 깨치도록 가르쳐 주는 것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며, 대종사님 개교의 동기에 부응하는 삶이다.

/남부민교당

[2018년 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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