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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처선방] 길 위의 봉공인, 우리는 거리로 간다
[무처선방] 길 위의 봉공인, 우리는 거리로 간다
  • 강법진 기자
  • 승인 2018.12.04
  • 호수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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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처선방-원불교봉공회 빨간밥차, 은혜원룸

[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호남선 기차를 주로 이용하다 보니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서울역은 왠지 낯설고 춥게 느껴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거리에 나앉은 실직자들은 서울역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 후로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경제 불황은 계속 됐고, 현재 4천여 명의 실직자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나마 일용직 일터라도 찾은 사람들은 겨우 몸 하나 뉘일 정도의 동자동·남대문 쪽방촌에서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낯설고 춥기만 했던 서울역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노숙인들의 작은 쉼터이자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는 징검다리 일터가 있는 '다시서기응급지원센터' 방문이었다. 서울시에서 위탁을 받아 대한성공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노숙인들에게 거리지원, 일자리지원, 주거 및 의료지원을 하고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대응해 주는 콜센터도 마련돼 있었다. 우리사회 아픔이 있는 곳마다 남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종교계가 IMF 시절부터 노숙인들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온 결과물이었다. 

교단도 시작은 같았지만 노숙인 지원사업은 한동안 중단돼 있었다. 그 이음새를 다시 이어준 것은 원불교봉공회 강명권 교무의 서울역 노숙인 은혜원룸과 빨간밥차 덕분이었다. 

강명권 교무는 수요일 아침이면 새벽시장에 가서 음식재료를 사오고, 설거지 뒷정리까지 솔선수범한다.
강명권 교무는 수요일 아침이면 새벽시장에 가서 음식재료를 사오고, 설거지 뒷정리까지 솔선수범한다.

따듯한 밥 한 끼, 봉공회 빨간밥차
겨울 문턱에 선 11월의 마지막 수요일 아침, 서울역 14번 출구 앞에 자리한 원불교봉공회 사무실로 봉공회원들이 속속 들어온다. 송천교당 김도원 교도가 미리 짜놓은 오늘의 빨간밥차 식단은 어묵볶음과 무나물, 배추김치와 소고기미역국이다. 

사무실 옆 조리실에 모여든 봉공회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500인분의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 400인분은 서울역 노숙자, 나머지는 은혜원룸 이용자들을 위한 일주일 반찬나눔이다. 재료는 강 교무가 새벽시장에 나가 신선한 것들로 구입해 놓은 상태다. 주부9단들로만 모인 봉공회원들이 구슬땀 한번 쭉 빼면 3~4시간 만에 500인분 반찬과 국이 완료! 밥은 저녁4시50분 노숙인 식사시간에 맞춰 밥차에서 쪄진다. 

봉사활동만 23년째라는 주방장 김 교도는 "원불교 테두리 안에서 봉사생활 하니 마음 다칠 일이 없다. 아들도 엄마가 봉사하니까 집안일이 잘 풀린다고 말한다. 몸은 좀 고단해도 봉공으로 채워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기쁨을 전했다. 

특히 이날 오후에는 서울특별시 자원봉사자축제에서 신림교당 정상규 교도가 표창장을 받았다. 서울역 노숙인 무료급식 봉사자로서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급식 봉사 중에서도 힘든 설거지봉사를 맡았다. 비록 남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자리지만 빨간 고무장갑, 봉공회 분홍조끼, 고무장화만 있으면 뭐든 해낼 자신이 있다. 그 재미를 알기에 바쁜 직장생활, 남보다 더 부지런히 업무를 마치고 뛰어와야 하는 길이 마냥 즐겁다. 그는 "봉사를 하려면 개인이 희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노숙인들로 인해 나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걸 알기에 지금보다 더 따듯한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강 교무가 서울역 인근 '따스한 채움터'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빨간밥차 무료급식을 시작한 건, 원기96년(2011) 5월이다. 재해재난현장에서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공하려고 공모한 '사랑해 빨간밥차' 사업이 지금의 노숙인 무료급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강 교무는 "노숙인 무료급식을 하며 노숙인의 실태, 삶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선입견으로만 알고 있던 노숙인의 삶을 들여다본 이상, 그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원기98년 10월 개소한 노숙인, 일용직들을 위한 작은 쉼터, 은혜원룸 사업이었다.    

원불교봉공회는 서울역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과 은혜원룸을 운영하며 우리사회 따듯한 나눔을 실천한다.
원불교봉공회는 서울역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과 은혜원룸을 운영하며 우리사회 따듯한 나눔을 실천한다.

사람 냄새 나는, 은혜원룸
IMF 시절, 우리나라는 실업자 150만 명 시대를 맞았다. 도심 곳곳에 노숙인들이 몰려들었고, 정부는 5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종교·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노숙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당시 개소한 실직자 쉼터가 19곳, 무료급식소가 26곳이었다. 강 교무는 "교단도 타종교인들과 함께 실직자 쉼터를 운영했다. 그때도 봉공회가 나섰다. 하지만 이내 끊기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교단 사업마다 봉공회 기금이 빠지지 않는 반면, 봉공회 자체 사업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었던 것이다. 노숙인 사업도 매한가지였다. 

은혜원룸은 기존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노숙자의 작은 쉼터로 만들어졌다. 정원은 43명이며, 대부분 기초수급자, 장애인, 일용직 노동자다. 몸이 재산인 이들은 3~4일 일을 하고 나면 다시 기운을 추슬러야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성인 한사람이 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고 여유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 다행히 부엌과 식당에 냉장고 칸이 따로 있어 봉공회원들이 만들어준 반찬과 공동 밭솥의 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강 교무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고 싶다. 물론 월세는 내야 하지만 먹는 것과 자는 것만 지원해 줘도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며 "이들이 일반인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이 작은 쉼터가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자주 들리지는 못해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안부인사를 꼭 잊지 않는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이 입주자들에게 "여기가 가장 편안하다"는 평을 얻게 됐다. 

이제 그의 꿈은 '착한식당'을 하나 마련하는 데로 내달리고 있다. 노숙인 그리고 쪽방촌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도 1~2년 만에 다시 거리로 나온다고 한다. 어렵게 다시 일어서고자 한 사람들에게 사회는 너무 냉정한 탓이다. 그런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더 어려운 이웃에게 따듯한 밥 한 끼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착한식당', 그의 시선은 여전히 길 위에 놓은 사람들에게 가닿아 있었던 것이다.   

서울역 인근에 자리한 원불교봉공회가 운영하는 은혜원룸.
서울역 인근에 자리한 원불교봉공회가 운영하는 은혜원룸.
서울역 인근에 자리한 원불교봉공회가 운영하는 은혜원룸.
서울역 인근에 자리한 원불교봉공회가 운영하는 은혜원룸.

사생일신의 마음으로
강 교무는 종교계노숙인민간네트워크 사무국장이다. 노숙인 지원사업으로는 종교계에서 후발주자이지만 그만큼 희생정신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노숙인 외에도 미혼모, 고아원, 가정폭력, 가출청소년 등 수많은 약자, 소외계층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들이 길거리로 나오기 전에 예방하는 일, 그것이 종교가 할 일이 아닌가"라며 "나도 밥차가 아니었으면 봉공회 일만 했을 것이다. 세상 일이 나의 일이라는 '사생일신(四生一身)'의 마음이 바로 뿌리 깊은 봉공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힘줘 전한 그 말, "대종사의 일원대도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에 바탕해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영과 육의 빈곤·무지·질병·재해와 전쟁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평화·낙원세상을 만드는 것이 원불교가 세계적 종교로 나아가는 길이다"고 일갈했다.

[2018년 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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