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TV드라마의 단골 주제가 있었다.
낳아준 은혜와 키워준 은혜의 대결이다.
부모 피은의 조목 첫 번째가 낳아준 은혜이며,
두 번째 조목이 키워준 은혜이다.

원불교에서도 부모은을 설명할 때 
고아로 자란 사람들에게는 난감하다고 말한다.

피은의 조목은 필요 충분 조건이 아니다.
모든 조목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은혜인 것이다. 
낳아준 은혜도 은혜이며 키워준 은혜도 은혜이다. 
무엇이 더 크고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일지라도 
내가 알고 느끼는 단 한가지의 은혜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 피은의 조목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라는 법은 없다.
낳아준 부모가 있고, 키워준 부모가 있고,
육신의 부모가 있고, 정신의 부모가 있고,
전생의 수많은 부모가 있다.

피은의 조목을 알고 느끼고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서가모니불은 500생을 닦았다 하니
천명의 부모가 있을 것이다. 
백명, 천명의 부모를 알고
그 은혜에 보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대종사의 바람이다.


/삼동청소년회 법인사무처

[2018년 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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