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을 실행모드 체로, 묘유를 실행모드 용으로
참회야말로 진실한 지선이자 진공묘유의 회복

[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진공성(眞空性)은 상대가 끊어진 절대 자리로서 일원의 진리 가운데 제일 공한 것이요, 묘유심(妙有心)은 적적한 가운데 영령함이 있는 것이며, 실체기(實體氣)는 사은이요, 인과리(因果理)는 순환하는 이치다. 이 네 가지를 사람 하나에 나누어 보면 성(性)은 일념미생전으로 꿈도 없는 때요, 심(心)은 희로애락의 분별심은 없어도 분별낼 만한 요소가 있는 것으로 대중심이 있고 영령함이 있는 것이며, 기(氣)는 성과 심을 담아 있는 육체요, 이(理)는 행하는 것과 보는 것과 숨쉬는 것과 희로애락이 발하는 이치이다."(<한울안한이치> 제1편 법문과 일화 3.일원의 진리 42)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성품의 속성을 알고 그 자리를 지켜서 육근작용하며, 현상을 살 때 물들지 않고 성품 그대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하여 세세생생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살고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함에 있다. 이것이 대승적 삶이다. 진공성 묘유심이 인과의 이치따라 실체인 현상세계로 전개되는 것이니, 진공을 현상세계 실행모드의 체로 삼고, 묘유를 그 실행모드의 용으로 삼아 공부인의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천만가지 경전을 다 가르치고 천만가지 선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없는 진리와 인과보은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 된다(<대종경> 인과품15)"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정산종사의 성심이기 법문은 우리공부의 방향로를 적실하게 밝혀놓은 법문이라 하겠다.

일원상의 진리를 '진공-묘유-인과-실체' 네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고요한 가운데 신령스럽게 아는 자리, 이 자리가 공적한 가운데 영지한 자리로써 묘유자리다. 적적한 가운데 영령함이 있는 자리, 희로애락의 분별심은 없어도 분별낼 만한 요소가 있는 이것이 인과의 이치따라 실체로 나타나는 것이니 육근이 희로애락을 발하는 모습이 실체이다. 그래서 인과의 이치를 은현자재로 풀이한다. 분별은 없어도 분별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상태가 은(隱), 즉 숨은 상태요, 인연과의 이치따라 나타나는 자리가 현(顯), 즉 현상의 실체다. 이 실체가 우리가 인식하는 유(有)요, 인연이 다하여 사라진 자리가 무(無)다. 현상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으로 업인(業因)이 업연(業緣)을 만나 업과(業果)로 나타남이 현상세계인 유이니, 일체가 유심소현임이 틀림없다.

앞에서 원만구족을 빠짐없이 다 갖추고 있는 것으로, 지공무사를 틀림없이 바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 바가 있거니와, 진공성에 바탕해 분별심은 없어도 분별할 요소를 빠짐없이 갖춘 묘유심(마음)이 인과의 이치따라 실체로 현상에 유무하는 것이라, 진공묘유는 유무초월의 자리로 분별, 즉 인과 미생전이다.

정산종사의 법문은 계속된다. "원통태허 무흠무여(圓同太虛 無欠無餘)의 자리가 일원상 자리이다. 무여라 함은 우리의 분별심은 참마음이 아니요 우리가 수양을 쌓아 천념을 백념으로 백념을 십념으로 십념을 일념으로 만들어 일념까지도 남음이 없이 없어져버린 자리가 우리의 자성이란 뜻이며, 무흠이란 우리의 성품은 단지 공한 것만이 아니라 이 성품 가운데는 우주만물과 산하대지가 무엇하나 빠짐없이 다 갖추어 있다는 뜻으로, 본래마음은 진공한 가운데 묘유가 있다는 뜻이다." (<정산종사법설> 9편<불교정전>의해 4.표어개요)

인과란 업인보과(業因報果)의 준말이다. 현재의 구성이 과거들의 집적이며, 미래의 내용이 곧 현재의 전개이다. 지은 바에 따라 설사 인(因)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참회를 통해 그 인을 변화시킬 수가 있고, 이 인의 변화가 연을 변화시켜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키니 일체유심소현의 이치가 여기에서 작동한다. 나의 마음작용에 따라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참회가 도문에 들어오는 초문이다. 천업을 임의로 하고 생사를 자유로 하는 것이 참회의 도리다. 무언가 부족한 상태가 원만구족한 상태로 지공무사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참회야말로 진실한 지선이자 진공묘유의 회복이요, 이로 인하여 우리가 누리는 극락이 전개되고 참 열반의 광대무량한 낙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진공성·묘유심·인과리·실체기'이니, 우리 모두 달게 받고 갚지 않으며 은혜를 심어(甘受不報種恩)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남부민교당

[2018년 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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