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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성 교무의 교리여행 32. 나를 위해 오셨다
이혜성 교무의 교리여행 32. 나를 위해 오셨다
  • 이혜성 교무
  • 승인 2018.12.06
  • 호수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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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높은 곳에서 물건을 꺼내는 중이다. 키 작은 내가 바둥바둥, 더듬거리다 물건들이 얼굴로 쏟아진다. '앗! 내 눈!' 쏟아진 물건 덕에 야단법석이 났지만, 난 거기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눈 때문이다. 눈가를 한참동안 눌러보고, 마사지 한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일단 눈은 감고 있다. 실은 아직 못 뜨겠다. 아파서 못 뜨는 것이 아니다. '눈을 떴는데 앞이 안보이면 어떻게 하지?' 불안해 뜰 수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슬그머니 떠본다. 

앗! 눈앞이 뿌연 것 같다. 큰일이다! 다시 눈을 감는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주문처럼 되뇌고, 눈을 조심스레 뜬다. 다행이 잘 보인다. "사은님 감사합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다. 아니, 좀 극성스럽다고?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내 눈이 그냥 눈이 아니다. '의느님' 도움으로 광명을 얻은, 수술한 눈이다. 안구에, 렌즈가 삽입 돼 있다. '안내렌즈삽입술' 후 의사는 당부한다. 비비거나 충격을 가하면, 안구 안의 렌즈가 움직일 수 있으니 절대 조심하라고. 그러니 당연히 떨어진 물건보다, 오직 내 눈이 걱정인거다. 이 눈이 평소에는 흔연하게 굴다, 한 번씩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게 경고한다. "너 조심해라. 이렇게 잘 보이는 거 당연한 것 아니다"하고. '다시, 눈이 안 보인다면' 이런 가정도, 내겐 공포다. 

수술 전엔 안경으로 교정을 해도, 시력이 0.5도 되지 않았다. 남들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맨 앞자리에 앉는 줄 알았지만, 실은 칠판이 전혀 안보여서였다. 더군다나 안경을 벗으면 거의 장님에 가깝다. 혹시 자다가 불이라도 나면, 나는 도망도 못 갈 것 같았다. '아마 안경을 찾다 타죽지 않을까' 이런 각오를 진지하게 했어야했다. 일반적인 교정수술은 불가능해 희망도 없었다.

'라섹수술'을 못한다는 판정을 받던 날, 하늘이 두 쪽 난 듯 서러웠다. 내 동생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언니, 십년쯤 지나면 과학이 발달해 언니 눈도 고칠 수 있을 거야. 힘 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전혀 위로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총명한' 내 동생의 예언대로 10년 동안 의학은 발달했다. '안내렌즈삽입술'이 상용화되어, 비로소 내 눈에도 광명을 준 것이다. 

6년 전 수술 후, 처음으로 눈 뜬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건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날 결심했다. "잘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온통 은혜로웠다. 그런데, 광명이 점차 힘을 잃어간다. 자꾸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정산종사는 "범부들은 작은 은혜와 처음 주는 은혜는 느낄 줄 아나 큰 은혜와 계속되는 은혜는 잘 모르나니, 근본적 큰 은혜를 잘 알아야 참다운 보은행을 하게 되나니라"고 법문했다.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58장)

내게 한 말씀이다. 스승님이 나를 위해 오셨다. 처음 눈 뜬 그날의 기쁨처럼, '감사합니다' 되뇌니 세상이 더욱 아름답다. 어쩌면 지난날의 고통도 나를 위해 준 것이다. 고통이 있었기에 '눈을 깜빡이는 이 흔한 광경'이 더없는 감사가 된다. 기억하자. '계속 되는 은혜'에 '계속 감사'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온통 축복이리라.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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