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교구 진해교당 남혜덕·손자은 부부 교도

봉공회장·교도회장·청운회장으로 궂은일 앞장서
주인의 심경으로 교화와 교당일 최우선

[원불교신문=최지현 기자] 교당 살림꾼, 교당 역사의 산증인, 최연소 교도회장. 이 모든 수식어는 한 사람을 향해있다. 주인공은 진해교당 덕산 남혜덕(63·德山 南慧德) 교도, 그는 진해교당의 최연소 교도회장으로서 18년간 교당의 크고 작은 일에 앞장섰다. 그가 이토록 오랜기간 교당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 자타원 손자은(59·慈陀圓 孫慈恩) 교도의 조력이 컸다. 손 교도 역시 진해교당 봉공회장으로 온갖 궂은일에 앞장선다. 11월의 마지막 날, 진해교당 살림꾼 부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남혜덕 교도는 30대 후반, 지인의 소개로 원불교를 알게 됐다. "교전을 처음 읽었을 때, 법문 내용이 와닿았습니다. '이 법이 내 삶의 지침서가 되겠다. 원불교가 이 시대에 맞는 종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교당에 열심히 나오게 됐습니다."

아내인 손자은 교도는 남편의 종교 생활이 못마땅했다. 그에게 '원불교'라는 종교는 너무나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부부에게 시련이 닥쳤다. 손자은 교도가 옛 일을 회상했다.
"70세가 넘으신 어머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병원에 갔지만 진단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죠. 가까운 절을 찾아가 천도재를 지내고, 무당을 찾아 굿도 해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남편이 당시 진해교당 교무님께 말씀을 드렸고, 49일 특별천도재를 지냈는데, 종재 후 거짓말처럼 어머님이 완쾌하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남편과 저는 천도법문의 위력을 크게 느꼈고, 남편을 따라 교당에 열심히 나오게 됐습니다."

손자은 교도는 그 이후로 교당의 살림꾼이 됐다. 교당일이 생길 때마다 전화 한 통이면 무조건 달려왔고, 18년째 봉공회장으로서 교당 봉공회를 이끌 뿐 아니라 교단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는 일원가족들의 믿음과 후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큰 딸이 고2 때, 교당에서 어린이 법회를 볼 사람이 없어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법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총부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신성회훈련에 참여하면서 전무출신의 꿈을 갖게 되어 진해교당에서 간사생활을 2년간 하고, 교학과에 진학했죠. 현재 미주동부교구 워싱턴교당에서 근무하는 남은주 교무인데, 진해교당 제1호 전무출신이어서 큰 의미이고 힘이 됩니다. 또한 차녀 여주와 교구 학생회 부회장을 했던 장남 성은이 그 외 친정식구들도 모두 입교해 일원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교도회장을 맡은 남혜덕 교도는 충만한 믿음과 서원, 강한 실천력으로 교당을 이끌어왔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해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교화를 위해 첫 번째로 '창작등'을 제작했다.  

"대각개교절부터 시작해 석존성탄절까지 약 한 달가량 밝히는 등이 대부분 정통 불교에서 사용하던 것이어서 원불교적인 것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학등'이라는 작품으로 중앙총부 법등축제 창작등 공모전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이 후 '대종사 십상등'으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교당 불단에 놓여있는 등이 바로 '대종사 십상등'입니다."

그의 실천력은 원기94년 '비전 수립'으로 이어졌다. 비전은 '늘리자 일오공! 법회출석 150명으로, 넓히자 일공공! 법당 100평 넓히기, 올리자 이단계! 전교도 법위 2단계 향상'으로 원기100년을 목표로 실천해나갔다. 

"원기100년을 앞두고 10년동안 비전목표를 달성해나갔습니다. 그 중 두 번째 비전목표였던 법당 100평 넓히기를 위해 원기96년 1월1일부터 천일 기도를 결제하고, 10년동안 지속적인 단별 릴레이기도, 릴레이 법문사경을 했습니다. 저는 교당 건축추진위원장을 맡았고 '일심으로 합력하면 다 이뤄진다'는 신념으로 결국 원기100년 4월12일 신축봉불식을 올렸습니다."

교법을 제대로 알고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난 남혜덕 교도는 10년간 성주 삼동연수원 선방에 참여했고, 경남교구 마음공부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 

"무시선법을 배워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아침에 청소 할 때 선심으로 하다 보니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어서 하루가 보람됩니다. 원기89년부터는 〈대종경〉 주석을 달아 하루에 만원씩 기도금을 내면서 천일기도를 올렸고, 삼밭재 바위에 올라 한달간 기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회사에서 중요한 계약이 성사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도의 위력을 또 한번 느꼈죠."

진해교당 허대성 교무는 두 부부를 "자비롭고 따뜻하며 화통한 천성을 타고났다"고 표현했다. 교당의 봉공회장, 전 교도회장, 청운회장으로서 온갖 궂은일에 앞장서고, 역대 교당 교무들을 한결같이 어머님처럼 보살펴온 부부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마지막 서원을 물었다. 

"남은여생 교당, 교단의 기관에서 몸은 자원봉사로 공중에 바치고, 마음은 회상에 바쳐 이 공부 이 사업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세생생 영원토록 하고싶은 서원입니다. 텅비어 가득차고 가득찬 듯 텅빈 일원상 진리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맑고 향기롭게 살고 싶습니다."  

주인의 심경으로 교화와 교당 일을 최우선하는 남혜덕·손자은 부부 교도. 그들은 진해교당의 역사 그 자체였다. 

[2018년 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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