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정신을 담은 그릇, 마음 그 자체
우리는 영육을 쌍전하고 있는가

[원불교신문=정인화 교무] 마음이 몸이고 몸이 곧 마음이기에 굳이 이 둘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몸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공부에 대한 관점을 더 확대해 보고자 함이다. 마음공부는 정신개벽, 용심법, 영육쌍전으로 이해되며 대종사와 정산여래, 대산여래의 큰 가르침으로 개교이래 지금까지 우리 회상의 근본 콘텐츠로 자리잡아 왔다. 근래에 와서는 영성적 명상과의 콜라보 내지는 심리학과 상담학에 힘입어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육과 교화를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마음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아픈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흔하게 감기와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혈압과 당뇨는 물론, 고지혈과 과체중으로 고생하고 허리와 무릎이 성하지 않아 거동이 어렵고 각종 면역질환과 암 등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살다가 궁극에는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공부가 평범한 상식과 생각은 물론 건강한 몸과 일상생활의 의식주를 제대로 견인하지 못 하고 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몸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물질의 다른 이름이며 정신을 담은 그릇이자 마음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몸이 성하지 않은 것은 맘도 온전하지 않은 것이고 몸이 병든 것은 맘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몸과 마음은 각각인 듯 동체이며 둘인 듯 하나다.

신체의 각 기관을 찾아 들어가 보면 그 단위인 세포를 만나게 되고 유형의 물질인 세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분자와 원자, 더 작은 단위로는 소립자와 미립자 형태로 구성되고 마침내 이온의 단계인 무형의 전기적 에너지로 환원이 된다는 양자물리학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몸과 맘의 경계(境界)가 있고도 없음으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서양의 인식체계는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하늘과 땅, 우주와 지구, 물과 공기, 하느님과 인간, 삶과 죽음, 현상과 원인, 유와 무를 이분화시켜 사고하고 있고 우리도 이러한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한 채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마음(몸)공부만 제대로 이뤄져 왔다면 우리에겐 이미 거칠 게 아무것도 없어야 맞다. 이것만 온전하게 이뤄진다면 절대 상수가 되어 교육, 교화, 사업, 제도개선은 종속 변수가 된다. 반면, 이 공부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교세 확장을 기대할 수가 없고 따라서 교단의 위상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제도를 몇개 바꾸고 불만을 개선한들 크게 뭐가 달라지겠는가. 마음공부 몸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개인의 신체, 정신, 영성, 신앙의 총체로서의 인격체는 언제 어디서나 존경받고 본받고 싶을 게 분명할 것이고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따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정체는 우연이거나 종교사적 보편 현상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며 그 중핵인 마음공부의 문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물질에 깃든 정신의 의미를 살펴볼 때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만물에 스며있는 에너지와 물성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기에 마음을 닦으며 사는 수도인은 몸의 성질과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 몸 구석구석의 기능과 구성물질의 속성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에 맞게 먹고 소화시키는 섭생의 원리에 따라 영양과 위생, 맛과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가지는 식생활의 정립이 건강한 몸공부의 시작인 거다.

호흡도 같다. 일상 속에서의 올바른 숨쉬기가 아닌, 명상을 위한 호흡에 치우치면 참선을 위한 참선, 공부를 위한 공부가 되어 쉽게 지루해진다. 우리의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섭생과 호흡, 수면에서 점검해야 하고 나아가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유산소 운동과 놀이 그리고 여가활동도 공부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산속에서 조용히 도를 닦고 신선놀이 잘 하는 것을 마음공부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면 대종사가 세상을 구하려 주세불로 와 활불로 살았을 리가 없다. 이런 도 닦기는 티벳 수도승이나 조선시대 스님의 몫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공부인이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사람,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여럿이 함께 갈수 있는 마인드를 지닌 상식적인 사람이 아닐까.

[2018년 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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