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성지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와 고산리 일대를 말한다. 소성리는 정산 송규 종사와 주산 송도성 종사 형제의 탄생 구도 성장지이고, 고산리는 정산종사 14대조부 충숙공 야계 송희규 선생이 자리를 잡은후 500년동안 세거해온 야성 송씨 집성촌이다. 정산종사 부친인 구산 송벽조 대희사가 결혼 후 소성리로 이주하여 정산, 주산종사를 낳아 기른 후, 원기3년(1918) 정산종사가 소태산 대종사 문하에 들어가게 되자, 대종사의 권유로 송벽조 교무가 원기4년(1919) 가족을 솔거하여 영광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정산종사가 종법사의 위에 오르고, "고향에 한번 다녀오자"는 부친의 말씀을 받들려 하였으나 시국의 형편과 교중의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채 부친이 열반하고 정산종사도 병환에 들게 된다. 정산종사, "꿈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보인다. 아버지께서 고향을 못잊어 하시더니, 고향가서 태어나셨다. 장성하면 우리 회상으로 돌아와 다시 전무출신을 하게 되리라"고 예언을 했다. 정산종사, 고향을 다녀오는 원을 이루지 못하고 원기47년(1962) 열반에 들자, 종재를 마친 후 유족과 시자가 진영을 모시고 성주를 찾는다. 

시간이 흘러 고산리에서 태어난 송인걸이 대구교당 학생회원으로 경북고를 졸업하고, 출가해 영산선원에서 2년간 간사 근무를 마치고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복학을 한다. 항타원 이경순 종사와 당시 대산종법사가 송인걸이 구산 선진의 후신임을 알아보고 기뻐한다. 

정산종사 시자였던 범산 이공전 종사가 중앙문화원장인 1980년대초에 법산 이백철, 아산 김인룡 등 남자 원로들과 힘을 모아 박실 구도지 옛 집을 매입하고 그 자리에 '소성구도지비'를 세움으로써 성주사적지의 흔적을 남긴다. 1992년 고향인 성주교당 교무로 부임한 송인걸 교무가 백여개 교당의 성주성지순례를 안내하며, 당시 대구교구장인 송순봉 교무와 함께 정산종사 탄생가를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매입하는데 성공, 총부의 명을 받아 복원 공사에 성공하게 된다. 1996년부터 5년간 거교적으로 정산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해서 그 일환으로 김현 교무(탄백사무총장)의 주도로 박실구도지 주변에 터를 확보, 대각전과 원불당을 짓는다.

이어 유물사적관리규정을 변경해 '성주성지' 호칭을 부여하고, '성주성지 찬가'(성가 172장)를 만든다. 원불교신문사 편집국장이자 정산종사 탄생 백주년 기념사업회 최연소 상임위원으로 문산 김정용 회장의 지근거리에서 사업회 일을 보필한 송인걸 교무는 2001년 대구경북교구 사무국장으로 부임, 6년간 창타원 김보현 교구장을 모시고 백주년 기념사업회 이후 성주성지 수호와 관리를 하는 김원명 교무를 적극 후원했다.

성주성지는 김원명 교무가 관리 책임을 맡아 18년이란 긴 기간을 통해 나무를 심고 땅을 추가로 확보하며 오늘날 성지의 면모를 가꾸는데 헌신을 해오고 있다. 김원명 교무가 성지를 지키는 동안 상당 기간은 정산종사 탄백 기념사업이 일단락된 이후라 성지순례의 발길도 뜸하고 교단적 관심도 그리 깊지 않았었다. 

그러한 차제에 성주성지에 교단적 관심이 집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전, 성주성지 정산종사 탄생가 뒷산인 달마산(달산)에 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성주성지수호대책위가 거교적으로 발족이 되고 당시 한은숙 교정원장이 대책위원장을 맡아 1천명이 넘는 전무출신들이 성주성지로 집결해서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는 기도와 순례를 가졌으며, 이후 출가교화단회를 돌아가며 열어서 성지수호의 의지를 대외에 표출했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물러나고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섰지마는, 사드는 마침내 달마산 롯데골프장으로 무단 배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들과 성주성지 수호를 위한 사무여한단의 피눈물나는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만명이 넘는 경찰의 공권력 앞에 사드 저지 대열이 무너지게 되고 사드 장비는 유유히 달마산으로 진입해서 자리를 잡고 말았다. 

시간이 많이도 흘러간 지금도 달마산 진입로인 진밭교에는 원불교 평화교당(천막교당)이 자리를 지키며 연일 평화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선명, 강해윤, 원익선, 강현욱, 최용정, 김광철 교무를 비롯한 여러 교무들과 교도가 교대로 평화운동을 이어가며, 정산종사 탄생 성지를 수호하고 있다. 

성주성지는 무엇보다도 소성리 주민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정산종사 탄생지이면서도 성역화 사업을 진행할 때 주민들의 몰이해로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사드 철폐를 주장하는 주민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평화운동을 한결같이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국가의 정책으로 배치된 사드를 교단의 힘으로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정산종사 탄생지인 성주성지가 사드로 인해 크게 알려지고, 정산종사가 평화의 성자로 드러나는 큰 전기가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통일의 기운과 행동이 무르익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사드가 물러나고 성주성지는 삼동평화의 성지로 거듭날 날이 올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날이 기필코 오리라 희망하고 기대하며, 산골마을 한겨울 강추위에 몸을 돌보지 않고 평화기도와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귀한 동지들에게 뜻있는 재가출가 교도들의 격려와 연대가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2018년 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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