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서품 16장에서는 "불교는 조선에 인연이 깊은 교로서 환영도 많이 받았으며 배척도 많이 받아 왔으나, (중략) 이와 같은 생활을 계속하여 오는 동안에 부처님의 무상 대도는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승려들은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소승에 떨어졌나니 이 어찌 부처님의 본회시리요. 그러므로 부처님의 무상 대도에는 변함이 없으나 부분적인 교리와 제도는 이를 혁신하여,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돌리자는 것이니라"라고 했다. 16장은 재래불교에 대한 비판과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돌리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를 <주역>의 일곱번째 괘인 지수사괘(地水師卦)로 만나고자 한다. 

지수사괘에서는 "사는 곧음이니 대인(大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사는 대중이다(사 중야, 師 衆也)"라고 해, 사(師)의 이중적인 의미를 논하고 있다. 사는 스승이면서 대중이라는 뜻으로, 아직 진리에 어두운 대중은 성인(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상육(上六)에서는 '위대한 지도자는 천명이 있으니, 나라를 열고 가문을 이어감에 소인은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해, 천명을 받은 지도자가 대중을 바르게 이끌 수 있다고 했다. 대종사가 9인 선진과 법인기도를 통해 천지신명에 법계 인증을 받아 도문을 열은 내용과 만나게 된다. 

먼저 재래불교의 비판은 "초육(初六)은 무리가 법령으로써 나오니 막히고 감춰지면 흉한 것이다"라고 해, 진리가 막히고, 감추어진 것은 재래불교의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법이 막히고 소승으로 감추어진 것은 법률을 잃어버린 것으로 흉한 것이다. 또 육삼(六三)에서는 사람들을 싣고 가는 수레는 천명을 받은 지도자가 이끌어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주관해서 끌고 가는 것은 흉하다고 했다. 불법의 공부는 자신의 구원에 머물지 않고, 대중을 구원하는 큰 수레를 이끄는 성불제중을 실천해야 한다. 

단사(彖辭)에서는 "사괘는 대중이고, 곧음이 바른 것이니 능히 대중을 바르게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다"라 하고, 대상사(大象辭)에서는 "땅 가운데 물이 있는 것이 사괘이니 군자가 이로써 백성을 포용하고 대중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해, 사괘의 의미가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주창한 내용과 만나게 된다. 또한 육사(六四)에서는 "무리가 왼쪽에 머물러 있으니 허물이 없다. 상에서 말하기를 왼쪽에 머물러 허물이 없음은 아직 상도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해,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돌려야 함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왼쪽은 '원'으로 하늘의 뜻을 익힌다는 의미이고, 일원상의 진리에 머물러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주역〉에서 사괘(師卦)는 유학의 왕도정치의 근본인 정공론(正功論)을 논하여, 대중을 기르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원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대종사의 일대 경륜인 제생의세와 만나게 된다고 하겠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8년 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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