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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오직 법문과 기도의 힘으로 역경 이겨내
[신앙인] 오직 법문과 기도의 힘으로 역경 이겨내
  • 유원경 기자
  • 승인 2018.12.18
  • 호수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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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대구경북교구 상인교당 장상안 교도

역경 속에서도 원망심 놓으려 힘써
새 교화터전 마련해 젊은 교화 이뤄보고 싶어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남편의 사업실패 후 늘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어디에 의지할까 하다가 교당과의 인연이 시작됐죠." 상인교당 상타원 장상안(65·常陀圓 張常安) 교도는 어려웠던 시절, 힘든 경계 속에 원불교를 만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에게서 모질기만 한 세월에서 결코 우연치 않은 인연으로 교당에 발을 디딘 그는 오직 기도 정성으로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를 들었다.

신심 있는 불교신자였던 그였다. 그런 그가 마음의 의지처를 찾던 중 개신교 집사인 고향 선배로부터 종교생활을 권유받고, 그 친구와 함께 원불교 교당을 찾게 됐다. "종교생활을 하더라도 개신교 신앙이 제게는 큰 발심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찰을 찾던 중, 원불교를 만나게 됐어요.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내 가까운 곳에 자주 갈 수 있는 곳을 찾게 됐고, 그래서 인연이 된 곳이 영양교당이었습니다." 

장 교도와 그의 남편은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공무원 벌이가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오며 개인 사업에 경험이 없던 그들에게, 새로 시작한 사업은 큰 어려움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너무 컸고, 그만큼 마음의 의지처가 간절했던 것 같아요. 영양교당에 다니면서 배심진 교무님을 만나 입교를 했는데, 6개월여 기간 동안 교법으로 지도를 받았습니다. 전 그때 일상수행의 요법 5조인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조목이 너무 가슴에 큰 위안이 됐고, 마음에 힘이 됐습니다."  

법문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은 그는 원기74년 1월1일 큰 발심을 내면서 영양교당에 입교했다. 그는 입교 전부터 매일 새벽기도를 해왔고, 신앙의 힘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정성을 모으는 수행에 힘썼다. 그에게는 기도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었고,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렇게 교당 생활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어떻게든 이 어려움을 이겨내보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맘과 같이 되지 않더군요. 그중에서도 힘들었던 문제는 채권자들이었어요. 한번은 학교 가는 둘째 딸을 길목에 세워놓고 '아빠 어디에 숨었냐'고 묻기도 했고, 제가 일하는 직장에 찾아와서 월급을 차압하겠다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영양을 떠나 대구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죠." 

원기79년 대구로 이사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떻게든 어려운 경제생활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교당 법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면서 늘 신앙의 힘으로 모든 일들을 극복해왔다. 

"원기99년에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제는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어려웠던 경제생활도 조금씩 해결돼 이제는 형편이 점점 좋아졌고, 생활에서 마음 쓰는 일도 공부심으로 해결하려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 경계를 극복해나가며 원망심을 내지 않으려 자신을 돌아봤다. 그렇게 마음공부로 수행하는 동시에 기도정성으로 신앙의 힘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현재 교도소 교화조력에도 힘쓰고 있으며, 지난 10월 대구경북교구가 주관한 교리실천 강연대회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또한 매일같이 원음방송 '성지의 아침' 프로그램에 맞춰 좌선과 기도를 하고, 이성택 원로교무의 '경전강의'를 시청하며 교전공부에도 깊이 적공하고 있다. 

"퇴직 전까지 제 일상생활은 1순위가 직장, 그 다음이 가정이었고, 교당생활이 세 번째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동안 소홀이 했던 〈정전〉 공부와 교화활동, 교도사종 의무를 힘닿는 대로 적공하기로 작정했죠. 퇴직 후에는 예전처럼 새벽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고, 딸아이가 결혼 전 사용하던 방에 불단을 마련했습니다."

부회장으로서 교당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주임교무를 보좌하며 새 부지매입과 교당 마련을 위한 불사에도 함께 하고 있다. "우리교당이 이번에 새로 교화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어요. 대구는 시내외곽 지역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이번에 상인교당이 시내외곽에 가깝게 진출해 새롭게 젊은 교화의 힘을 내고 싶습니다."

현재 상인교당은 새 교화 터전을 마련하고자 교당교도들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2일 천일기도 결제식을 시작으로 원기106년 8월27일 해제식을 갖는다. "요즘 교화가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 상인교당에서 젊은 교화, 큰 교화를 이뤄보고 싶습니다. 많은 교도님들이 함께 협력불사에 힘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직 교화 일념인 그에게서 교당의 주인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입교까지 어려운 경계 속에서 인연이 됐지만, 그 역경을 극복하는 가운데 그는 신앙을 찾았고, 수행의 힘을 얻게 됐다. 난경에서도 기도의 힘으로, 또한 스승의 법에 의지한 삶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돌려낸 그의 삶의 모습이야말로, 소태산 대종사가 이끌어 주고자 했던 광대무량한 낙원의 길이 아닐까.  

[2018년 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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