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최봉은 원무] 정산종사 말씀하시었다.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함은 일이 없을 때(靜時)의 공부 방법으로 일심양성법(一心養成法)이요, 우리 심중에 모든 선악과 사량계교를 없애고 오직 일원상과 같은 원만청정한 마음을 기르자는 것이니, 일상(一相)은 일원상의 약칭으로 곧 일념미생전 자리이며, 삼매는 곧 정정(正定)을 말하는 것이라. 염불이나 좌선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전하게 함은 일상이요, 공부가 순숙(純熟)하여 온전하려는 한 마음과 그 온전함 마음까지도 구망(俱亡)한 지경에 이르러서 오직 마음이 여여함을 이룰 때를 일러 일상삼매라 한다.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함은 일이 있을 때(動時)의 공부 방법으로서 정의양성법(正義養成法)이요, 우리의 심신을 작용함에 선악간 한편에 기울어짐이 없는 원만한 행(行)을 함이니, 일행이라 함은 '일원상과 같은 행(行)'의 약칭이니라. 우리의 심신을 정의로써 함은 일행이요, 공부가 순숙하여 정행을 강연히 하려고 하는 마음과 정행을 한다는 상(相)까지도 놓아버리고 중용(中庸)에 이름이라, 곧 공자의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행하되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의 지경에서 심신작용이 정의로만 행하여짐을 일행삼매라 하나니라. 이를 또 삼학으로써 분석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는 정신수양 공부요, 일행삼매(一行三昧)는 사리연구와 작업취사의 공부이니라."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경계를 따라 심신을 작용하게 되는 유사시에는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들이대어 진여(眞如)의 본심(本心)으로 원만한 행을 하자는 것이요, 무사시에는 쓸데 없는 번뇌와 계교·사량으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염불이나 좌선이나 주력(呪力)을 써서 나의 마음을 일심을 만들어 진여(眞如)의 자성을 회복시키자는 것이라. 이러한 까닭에 '정중정(靜中靜)은 비진정(非眞靜)이요, 동중정(動中靜)은 시진정(是眞靜)이라' 하였다."
(<정산종사법설> 제9편 〈불교정전〉 의해, 표어개요 중)

수양력이 없는 사람은 한 번 동하면 근본 마음까지 동하여 동하는 가운데 조금도 정(靜)을 가져보지 못하며, 또 한 번 정하면 정한 데 집착하여 조금도 성성(惺惺)한 영지(靈知)를 가져보지 못하니, 만약 동하는 가운데 정이 없이 동하는 것은 원만한 동이 되지 못하고, 정하는 가운데 영지가 없이 정하는 것은 진정한 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할 때 동하더라도 심중에 주착이 없이 동하고, 정할 때 정하더라도 심중에 대중심을 놓지 않도록 하여 동과 정이 항상 일치돼 여여하도록 심신을 수련해야 한다.

이것이 곧 무시선이니,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행주좌와 24시간에 항상 선의 심경을 가지고 매매사사를 원만히 처리하는 것이니, 잠에서 일어날 때에는 일어나는 데에 일심이 되고, 밥 먹을 때에는 밥 먹는 데에 일심이 되며, 대화를 나눌 때에는 대화하는 데에 일심이 되고, 걸을 때에는 걷는 데에 일심이 되며, 일을 할 때에는 일하는 데에 일심이 되고, 놀 때에는 노는 데에 일심이 되며, 야단을 칠 때에는 야단 치는 데에 일심, 잠을 잘 때에는 잠자는 데에 일심 등 만사를 작용하여 나갈 때에 한 때라도 원만무결한 선의 심경을 놓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육조단경> 부촉유통(咐囑流通)에서 혜능선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희들이 종지를 성취하고자 하거든 모름지기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통달하라. 어떤 경우라도 관념에 집착하지 않아서 증오와 애착을 일으키지 않고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며, 이익과 손해 등을 생각지 않아서 편안하고 고요하며 마음이 비고 조화로우며 맑으면 그것을 일상삼매라고 한다. 어떤 경우라도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누움에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진정한 맑은 경지를 이루면 그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대산종사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의 경지를 일여선가(一如禪歌)로 표현했다.
1. 생(生)에도 애착 말고 사(死)에도 공포 마소/ 출격장부 되올진대 천당 지옥 자유로다/ 번뇌가 다하오면 생사처 그치나니/ 생사 없는 일여선에 이 한몸 넌짓 싣고/ 여천지 무궁토록 걸림 없이 노오리다.

2. 일이 있어 동할 때도 일행삼매 놓지 말고/ 일이 없어 정할 때도 일상삼매 놓지 마소/ 과거의 성현님도 이 길을 닦았나니/ 동정일미 일여선에 이 한몸 넌짓 싣고/ 자나깨나 이십사시 삼매중에 유희하리.

대산종사의 일여선가를 읊은 심경이 부럽지 않은가. 어서어서 공부하자.

/남부민교당

[2018년 12월2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