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소태산 대종사는 창극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을 들으실 때면, 언제나 그 정절과 효우의 장함을 칭찬하며, '충열효제(忠烈孝悌)가 그 형식은 시대를 따라 서로 다르나, 그 정신만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없이 활용되어야 하리라'고 했다. 젊은 세대들에게 충효열(忠孝烈)이란, 어찌 보면 단지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고리타분한 개념처럼 들리기 쉽다. 정산종사는 충효열이 지금 세상에서 가지는 윤리적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며 앞으로 세상에는 이 충효열의 정신이 살아나야지만 세상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즉, 충(忠)은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아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니, 이 참된 마음으로 사람사람이 서로 교제를 하며, 어느 직장 어느 처소에 있든지 항상 사 없는 노력을 하여 사회에 공헌하며,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바로 이 충의 정신을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단지 임금 한분에게 바치는 마음만을 충이라고 국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충은 곧 '참되고 진실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효(孝)에 대해서는,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이가 어찌 다른 은혜를 먼저 알며 널리 천지와 동포와 법률의 근본적인 은혜를 알게 되리요. 효사상은, 부모은으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은혜를 발견하여, 어느 처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천만 경계를 오직 이 감사 하나로 돌리는 것이 다 효의 활용 아님이 없다'고 했다. 

열(烈)에 대해서는, '열이란 무슨 일이나 그 지조(志操)를 잘 지키는 것이니, 열의 실행은 남녀노소 간에 천만경우를 당하여 그 지조를 잃지 않는 것'이라 했다. 지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여자의 정절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어느 처지에 있든지 항상 마음을 굳게 하여 정당한 일이면 죽기로써 실행하고 부당한 일이면 죽기로써 않는 것'이 바로 이 열의 활용이라 했다. 옛날에 남자가 죽으면 따라 죽는다든지, 정혼한 남자가 죽으면 평생 그 집에 가서 늙는다든지 하는 것은 '우치한 열'이라 하여, 열이라는 것을 좁은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悌)의 의미도 이 같이 생각해보면, 형제 간에 우애할 것은 물론이며, 나아가 동지 간에 시기질투 없이 화합하자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인륜강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부모자식 간의 패륜 범죄뿐 아니라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이 거의 매일  신문 뉴스거리로  등장한다. 충열효제(忠烈孝悌)를 앞서 밝힌바와 같이 그 근본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곧 병든 세상을 고치는 약재이며 이 세상을 바로잡을 윤리가 될 것이다.  충은 곧 우리의 참된 성품을 찾아 진실하게 살자는 것이요, 효는 내가 입은 은혜를 발견하고 보은할 줄 알자는 것이요, 열은 정당한 일에는 지조를 지켜 꿋꿋하게 해나가자는 것이다. 

도덕이 무너진 이 세상에 본인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조직의 범죄와 비리를 제보하는 공익제보자나, 길가에 쓰러진 남성을 발견하고 타고 가던 버스를 세워 달려가 심폐소생술로 구한 여고생의 기사 등을 보면 이 험한 세상에도 충효열의 불씨는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있다는 희망을 준다. 

/미주총부법인

[2018년 12월2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