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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점에서
[사설] 원점에서
  • 원불교신문
  • 승인 2018.12.31
  • 호수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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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다. 아무튼 새해다. 원기104년이 열리고 있다. 온 누리에 법신불 사은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음공부를 해서 광대무량한 낙원 건설이 앞당겨졌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잠시 그쳤던 전쟁과 내란은 계속될 것이고 빈곤과 기아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북극의 얼음은 꾸준히 녹아내릴 것이고, 출생처가 의심스러운 미세한 먼지들은 세포 속까지 파고들 것이다. 포장을 달리한 이기주의와 다양한 차별들 또한 교묘하게 오염 범위를 넓혀 갈 것이고, 정파적 편견과 일방적 주장은 고집스럽게 되풀이 될 것이다. 먹고 사는 게 문제인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새된 소리 앞에서 평화통일의 발걸음은 주춤댈 것이다. 땀 흘려 일하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기성세대들이 당연하게 누리던 행복도 소위 헬조선의 청춘들에겐 버거운 숙제가 되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우리 교단은 새 종법사와 수위단원, 새 교정원과 새 감찰원, 새 교구장과 새로운 일터를 맡은 교무님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하지만 교단도 묵은 숙제와 난제들을 가지고 있다. 누가 대신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온전히 주인된 원불교인들의 몫이다. 인과 법칙은 일면 냉엄하다. 하면 한 만큼 가벼워지고 안하면 그만큼 쌓여갈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전산종법사는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하자'라고 천명했다. 취임 일성, 새 출발의 일성이다. 새 법문이지만 제불제성과 역대 스승들께서 늘 강조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나를 새롭게 하려는 발심은 종교의 핵심이다. 그 노력은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결실 맺을 수밖에 없다. 

나와 세상 사이에서 기능하는 교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단 구성원들이 신앙과 수행으로 성불하고 교법의 사회적 실천으로 제중하고 교화하도록 돕고 촉진해야 한다. 교단의 존재 이유다. 나와 교단과 세상은 셋이면서 하나다. 우리의 공부와 사업 추진에 있어서 이 세 가지 범주화는 매우 유용해 보인다. 소박한 새 출발을 하는 〈원불교신문〉도 이 관점과 틀로 새로워지려고 한다.

새 출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점에서 해야겠다. 원점은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을 의미한다. 원점을 벗어난 행진은 목적지와 점점 멀어진다. 원점을 벗어나면 혼미해지고 타락한다. 우리의 원점은 어딘가? 부와 명예도 없는 자리. 정남·정녀·숙남·숙녀도 없는 자리. 마른자리 진자리도 없는 자리. 성공과 실패도 없는 자리. 출가와 재가도 없는 자리. 진솔한 서원과 신심·공심·공부심만 온전히 빛나는 마음자리. 그 자리가 우리의 원점이 아닐까? 진정한 원점은 목적지를 이미 품고 있다.

우리 원불교인의 원점(原點)은 원점(圓點)이다. 법신불 일원상을 원점 삼아 새 출발하자. 다시 원점에서.

[2019년 1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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