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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교전'은 언제쯤
'쉬운 교전'은 언제쯤
  • 김수영 교도
  • 승인 2018.12.31
  • 호수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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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용어의 한글 표기가 주는 혼란 고려해야
교화에 활용할 개정된 교전 필요 절실
김수영 교도
김수영 교도

[원불교신문=김수영 교도] 얼마전 올해의 마지막 교화단회가 있었다. 교당에 처음 온 분들을 안내하는 단인 우리 '신입단'의 단회에는, 교화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새 교도와 예비교도가 항상 함께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강남교당 교화주제는 '고마워서~'이다. 섭섭하고 미안한 일이 있었더라도, 고마웠던 것만 이야기하라는 교무의 말씀에 각자의 고마움에 대해 회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새로 온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처음 교당을 찾아 주는 분들이 있기에 이 분들을 통해 보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또 수시로 질문을 해서 나로 하여금 공부하도록 만드는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새로 온 분들은 조용히 침묵하는 가운데 교당 분위기를 탐색하곤 했는데, 요즘은 궁금한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편이다. 

아침마다 보내드리는 법문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바로 문자를 보내온다. 이 분들의 질문 중 대다수는 한문 투의 표현이나 한자 단어를 한글로만 표기한 경우이다. 

우리 동네 교차로에 모 봉사단체에서 세운 커다란 화강암에 '초아의 봉사'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의아했던 경험이 있어서(아마도 '超我의 奉仕'를 말하는 듯하다. 원불교용어로는 '무아봉공(無我奉公)'쯤 될 것이다. 새로 온 분들의 혼란스러움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교전이 너무 어려워요, 좀 쉽게 만들면 좋겠어요"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언젠가는 식사 후 커피 준비를 하다가 신입 교도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한 분이 "모두들 일원상서원문을 외우는 것 같아서 한번 외워 보려고 했는데, '언어도단'에서 막혀서 진도가 안 나가요. 뜻도 모르고 외우려니 외워지지도 않고요"라고 말씀하자, 또 다른 분이 "저도 그래요"라고 했다. 나에게 직접 물어 본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설명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 분들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었는데 혹 도움이 될까 해서 지면으로 옮겨보려 한다. '언어도단'에 함축된 교리적 해석은 교무님에게 맡기고 1차적 문자학으로 분석을 해본다. 

언어도단(言語道斷)에서 言(말씀언)은 한문에서 字(글자 자)와 통용된다. 가까운 예로 5글자로 된 시를 오자시(五字詩) 대신 오언시(五言詩)로, 7글자로 된 시는 칠언시(七言詩)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語(말씀 어)는 굳이 따지자면 言+吾(나 오)의 구성으로 내가 하는 말로 보면 된다. 그리고 도(道)는 보통 쓰는 '길 도'가 아니라 '말할 도'이다. 도(道)가 '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한문에서 흔하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의 좋은 점을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道吾善者는 是吾賊이요 道吾惡者는 是吾師니라) 칭찬보다는 단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으로 보면 도는 상대가 말하는 것이다. 즉 언어도단에서 앞의 세 글자는 모두 '말하다'의 뜻으로, 言·語·道가 모두 斷(끊을 단)을 수식하여, '글로도 표현 할 수 없고(言)', '나도 말할 수 없고(語)', '너도 말 못하는(道)'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언어도단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이라는 형용사이다. 

교단 차원에서, 보다 이해하기 쉬운 새 교전편찬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대종경〉 전망품 3장에서 "앞으로는 모든 경전을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편찬하여야 할 것이며…"라고 했는데, 대종사 재세시에는 한문을 일상적인 생활용어로 사용했던 마지막 시대였던 만큼, 순 한글로 된 지금의 교전이 탄생한 것만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와, 교전에 남아있는 한문 투의 표현과 용어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괴리감이 존재한다. 

지금의 교전처럼 한문용어를 단순히 한글로 표기하는 것만이 쉽게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은 재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에는 신입교도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이해되고 수긍하는 새 교전이 나와서 대중교화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남교당

[2019년 1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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