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의 발전이 교단 발전 이끄는 원동력
인재 양성 위한 교단의 정책적 배려 있어야

김방룡 교수

[원불교신문=김방룡 교수] 올해는 원불교가 법계의 인증을 받은 법인성사 10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표방하고 출발한 원불교가 100년의 역사를 지나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0년간 한국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분단 그리고 군사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을 경험했으며 이제 평화와 통일의 길목에 들어서 있다. 그야말로 격변의 시절을 겪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원불교 또한 교단의 발전과 성장을 향한 지속적인 길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는 '성장'보다는 '분배'와 '행복'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라 있다. 경제적 발전이 빈부의 양극화를 가중시키고, 물질적 풍요가 도리어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기도 했다. 교통과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이 도리어 더 바쁜 삶의 질곡 속으로 치닫게 하는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전화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즉 '물질의 개벽'보다는 '정신의 개벽'이 필요한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생활 속의 불교, 재가출가가 함께하는 불교,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불교를 표방한 소태산 대종사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의 미래에는 많은 난관이 산재해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원불교 교도의 주축을 이루는 노년층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종교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출가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원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종교계가 공통적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불멸 후 100년경에 이르러 상좌부와 대중부로 교단이 분열된다. 그것은 계율의 문제로 시작됐지만 그 핵심은 부처님의 교설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있었다. 즉 부처님의 교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혹은 '교설에 담긴 의미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관점의 차이가 교단의 분열을 가져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단의 분열은 이후 불교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는데, 그 이유는 상좌부와 대중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불교학이 성장해야만 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원불교 해석학이 출현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불교학계와 종교학계는 물론 한국사회에 있어서 원불교학의 위상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의 특성상 교학의 발전이 교단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학이 발전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 교무의 자질이 향상될 수 있다. 교무의 자질이 향상되어야 시대와 환경에 맞는 교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필자가 박사과정 때 한국 유학계 거두였던 유명종 교수로부터 〈심경(心經)〉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유 교수는 동아대에서 정년을 하고 원광대 대학원에 강의를 맡았다. 

199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원광대 도서관에 다녀온 교수님이 화를 삭이며 강의실에 들어오신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원광대 도서관에 당신이 기증한 책을 빌려보려 갔는데,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서가 중한 줄만 알았지, 고서를 읽을 줄 아는 학자들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몰라"라고 한 말씀이 지금까지 생생히 떠오르곤 한다.

출가자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앞으로 교무가 교화의 전면에 나설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결국 교화는 재가자 중심의 교화단에 맡겨야 하고, 교무의 역할은 교도들의 영성과 마음공부를 지도하는 본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젊은 청년들이 교당을 찾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감화시키고 삶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학과의 교육 목표를 교단의 성장을 위한 기능의 양성이 아닌 제생의세의 삶을 살아가는 종교지도자의 양성에 두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불교학의 발전이 필요하고, 교학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단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남대학교 한국선학회 회장

[2019년 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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