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한 때 들렀던 해외 어느 교당의 주임교무가 밤마다 오체투지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스스로를 완전히 비우고, 모든 것을 법신불에게 바치는 행위가 바로 오체투지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참과 이참이 일치가 된 행위가 이 오체투지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108배를 올리는 것도 같은 의미다. 108은 번뇌를 말한다. 번뇌인 한 생각으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사참을 통해 번뇌로 인한 죄업을 뉘우치는 일, 이참을 통해 모든 죄업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일, 이 양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인생은 늘 새로워질 수 있다.

불가에서는 이처럼 인생의 새 출발을 위한 참회를 수행과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보았다. 따라서 다양한 참회 방법으로 발전했다. 삼품참회, 육근참회, 대승육정참회가 그 대표적이다.

삼품참회는 중국에서 발전한 정토교의 참회방식이다. 7세기 선도(善導)가 〈왕생예찬〉에서 이를 설했다. 참회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먼저 하품참회는 참회 중에 전신이 뜨거워지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중품참회는 전신이 뜨거워지며 털구멍에서 땀이 나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것, 그리고 최고의 참회인 상품참회는 온몸의 털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참회는 말법시대에 번뇌로 가득하여 깨달음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중생의 근기를 스스로 돌아보아 부처님이 구제해주시기를 원하는 중생의 간절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미타여래에 대한 믿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육근참회는 또한 중국 천태종의 법화참회 수행법이다. 법화삼부경의 하나인 〈관보현보살행법경〉에 따른 것으로 육근의 죄업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참회 순서는 일심을 다하여 무릎을 꿇고, "옛날부터 성품이 본래 항상 공적함에도 인연이 전도되고, 육근(각각에 대해)에 탐착하여 중죄를 지었으므로 지금 참회합니다"고 아뢰며 참회문을 읽고, 오체투지하며 삼보 전에 예배한다.

안근(눈)은 색에 미혹되고 탐착된 인연, 이근(귀)은 미혹과 사견, 비근(코)은 향기에 대한 탐착, 설근(혀)은 맛에 대한 탐착, 망어, 꾸미는 말, 악한 말, 양설, 삼보비방 등, 신근(몸)은 불선업, 살생, 도둑질 등, 의근(뜻)은 탐진치와 십악·오역죄 등에 대한 참회를 말한다. 이러한 참회는 무상과 무아에 기반, 실상을 깨달아 육근을 법으로 장엄하게 하는 데에 목표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효(元曉)의 대승육정참회다. 법화참회처럼 육근을 나누어서 하지 않고, 총괄적으로 한다. 순서는 간단히 하자면, 죄업의 실상이 본래 무생(無生, 남이 없음)함을 관하고, 육정(六情)의 방일(거리낌없이 맘대로 하는 것)을 참회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에는 깊은 삼매에 들어 여여한 자리에 들어가야 참된 참회가 된다. 그 원리는 무명의 업장과 현재의 욕망이 결합하여 육근인 내가 육경인 경계를 나누게 되고, 마침내 대상에 대한 악업이 발생한다고 본다.

원효는 육경에 집착해 지은 악업은 결국 인연에 따른 것일 뿐 자성이 없는 것이므로 허깨비와 같이 공하다고 관하면 취할 것도 없어서 죄업이 소멸하게 된다고 한다. 이 모든 참회의 방식은 결국 이참과 사참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광대학교

[2019년 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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