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심법 〈정전〉을 응용하고
문답·감정·해오를 얻는 공부 ①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이 코너는 생활환경과 경계가 다른 여러 공부인이 지도인에게 문답하고 감정과 해오를 얻은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마침표를 찍으면 도가 아니듯이(道可道非常道), 정답은 없고 명답만 있듯이(無有定法) 스승은 똑같은 질문을 하는 열 명의 제자에게 각각 다른 답을 하고, 한 제자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오전과 오후의 답을 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문답은 공부의 방향로를 제시할 뿐입니다. 우리 각자 구전심수(口傳心授; 문답 감정 해오) 정법 아래 산 경전 큰 경전으로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대종사님이 바라시는 교당(교화단)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기를 주의하고, 감각된 바를 지도인의 감정 얻기를 주의하고, 의심된 바를 지도인에게 해오를 얻기를 주의하는 곳입니다.

▷공부인: 엄마가 우리 집에 피신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김치 가지러 친정에 가보니, 동생이 집에서 편하게 쉬라고 우리 집에 와계셨던 것 같아요. 한 방 먹은 기분이에요. 욕하면서도 먹을 것 다 해놓고 나오시는 엄마. 예전 같으면 열 받았을 텐데 저도 자식들 키우면서 욕해놓고 한편으로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알기에 묘하게 이해가 돼요.
▷지도인: 엄마는 영원한 패자죠. 엄마를 대하며 일어나는 그 마음으로 공부 잘 하고 있어요. 내가 내 마음으로, 내 경계를 가지고, 내 공부를 하는 것이 우리 일원상의 진리, 우리 일원상의 신앙, 우리 일원상의 수행, 우리 일원상의 서원, 우리 일원상의 법어입니다.

▷공부인: 큰 공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엄마와 동생의 애증 어린 관계를 보며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을 만나는 공부를 해요. 엄마가 동생을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이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 따라 있어진 묘한 마음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도인: 그것이 바로 일원상의 신앙이죠. 일체 중생의 본성인 엄마의 마음을 일원상의 진리로 믿고 있으니까요. '엄마의 마음이 분별, 차별이 없는 자리에서 공적 영지의 광명(경계)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난 것이구나,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난 것이구나, 언어 명상이 완연해서 장중에 한 구슬같이 드러난 것이구나' 알고 또 믿고 있네요. 

▷공부인: 원불교가 신앙이 약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명상(名狀) 신앙이 아니어서 그런 오해를 하나 봐요. 신앙을 절대적 대상에 귀의하고 맡기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일원상의 신앙은 신앙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일원상의 신앙은 귀의해야 할 절대적 대상이 없잖아요. 
▷지도인: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앙은 '일원상의 신앙'이라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할 것 같아요. 일원상의 신앙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것입니다. 일원상의 진리는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존재(우주 만유의 본원)이고, 우리 마음(일체 중생의 본성)이고, 모든 부처님과 성인들의 마음(제불 제성의 심인)입니다. 
우리는 일원상의 진리 자체이고, 일원상의 진리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원리를 알고 원만하게 대조하며 사용하느냐 못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죠.

▷공부인: 일원상의 신앙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내 마음 작용이 곧 일원상의 진리인 줄 알게 되니, 저와 갈등하는 사람들의 마음 작용이 진리인 줄 알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을 일원상의 진리(부처님)로 모시게 되는 것 같아요. 단장님께서 단장님의 개인적 언어로 문답하지 않고 〈정전〉의 언어와 법으로 연결해주시니 감사해요.
▷지도인: 마음을 공부할수록 내가 아닌 '법의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죠. "나=진리=정전(正典)=용심법(用心法)"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용심법(用心法; 마음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고 교문을 여셨습니다. 〈정전〉은 남녀노소 유무식 선악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생활 속에서 대조할 수 있는 용심법 진리, 용심법 신앙, 용심법 수행, 용심법 서원을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으로 가르쳐주신 경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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